'강재구 소령'을 잊지 말자

'강재구 소령'을 잊지 말자

[ 예화사전 ]

안현수목사
2015년 12월 22일(화) 17:19

태릉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가면 그 학교를 졸업한 강재구 소령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그는 희생정신으로 부하를 살리고 하늘나라에 간 화랑의 후예이다. 1965년 10월 4일 월요일 오전 10시 37분 강재구 소령은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고 수류탄과 함께 순직했다.

당시 맹호부대라고 불리는 수도 사단 제1연대 3대대 10중대장이었던 그는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강원도 홍천 인근의 부대훈련장에서 수류탄 투척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훈련 도중 박 모 이등병이 던진 수류탄이 높이 치솟아 중대원 쪽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만일 그 수류탄이 터지면 병력 대부분이 유효반경 내에 위치해 큰 살상이 예상됐다.

더군다나 지형이 평탄치 않아 손으로 받지도 발로 찰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강재구 소령은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쳤고 곧 폭음과 함께 무참한 주검으로 산화한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이렇게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과 권사님이셨던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그가 평소 좌우명으로 삼은 문구는 '굵고 짧게 살자'였다고 한다.

언젠가 방문한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그의 유품을 보는 중에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그가 산화하던 순간에 그의 군복 상의 주머니에 있었던 작은 성경책이다. 펼쳐 있는 성경 말씀 요한복음 15장 13절 말씀을 그가 빨간 줄로 그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말씀이다.

강재구 소령은 예수님의 제자로 그리고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실천한 위대한 성도이다. 그는 넉넉지 않은 군인 월급을 타서 멀리 계신 홀어머니께 매달 보내며 위안으로 삼았던 착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강재구 소령의 희생정신이 한 동안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는데 어느 정권에서 슬며시 사라진 것이다. 자신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왜 교과서에서 사라지게 했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온 나라를 충격 속에 빠뜨렸던 세월호 사건에서 우리는 승객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선장이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고 도망치듯 먼저 탈출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 모두는 참 나쁜 선장이라고 비난을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강재구 소령과 같은 지도자는 정말 훌륭한 그리고 이 시대에 그리운 사람이다. 얼마 전 나는 강원도 홍천에 있는 강재구 소령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산 중턱에 낡은 건물로 비도 새고 했는데 새로 단장한 기념관을 보니 잊혀져 가는 강재구 소령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구나 하는 생각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독자들도 자녀들과 함께 한번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특히 강재구 소령의 유품 중에 기독교적인 것들이 여러 점이 있어 은혜가 된다. 참고적으로 강재구 소령 추모공원 위치는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성동2리 985-3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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