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과 안창호 선생

칼빈과 안창호 선생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12월 15일(화) 16:00

김명배
前 주 브라질 대사ㆍ예수소망교회
 

필자의 아버님이 일생 동안 가장 존경한 분이 존 칼빈 목사였으며, 어머님이 가장 존경한 어른이 도산 안창호 선생이었다. 

감사하게도 필자는 존 칼빈 목사가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 지도자로서 정신적 기반을 확립한 제네바와 도산 선생께서 자신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신 정신적 고향인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두 분 모두 근면, 성실, 정직, 애국애족의 기독교 윤리관을 몸소 실천하신 점에서 귀감이 되는 분들이다. 

필자는 1977~1978년 제네바에 근무했는데 존 칼빈 목사님의 기독교적 윤리관에 바탕을 둔 신앙적 전통이 시민들의 의식 속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음을 도처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제네바 교도소에는 재소자가 한 명도 없으면 지붕에 백기를 게양하게 돼 있는데 1년 열두 달 백기가 펄럭이고 있었으며 시민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제네바 시내에는 공해방지를 위해 전기를 이용한 무궤도 전동차를 운행하는데 승객들이 표를 사서 검표 없이 승차하고 2~3개월에 한번씩 검표원이 불시검표를 하게 되는데 전동차를 운행한 이래 제네바 시민으로서 무임승차로 적발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시민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1977년 초 중앙정보부의 정기 보안감사를 위해 제네바를 방문한 한 감사관이 상당액의 현금과 감사 서류가 든 중요한 가방을 벤치에 두고 한 시간 이상 필자와 함께 이웃도시를 향해 달리다가 문득 가방을 두고 온 것을 알고 얼굴 빛이 사색이 됐다. "다른 나라 같으면 가방을 찾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지만, 성실, 정직의 칼빈 정신이 몸에 밴 제네바이므로 가방을 본 사람들이 틀림 없이 주인이 가방을 다시 찾으러 올 것이라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위로하며 차를 급히 몰아 벤치에 가보니 정말 가방이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필자는 1999~2001년 LA 총영사로 재직하면서 많은 감동적 사건들을 체험했다. LA는 우리 민족이 일제 하에 신음하던 암울한 시절에 도산 선생께서 정직과 성실의 기독교적 윤리관을 바탕으로 민족혼을 일깨우고 자주독립 정신을 고취하신 정신적 고장이다.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따라"라고 교포들을 계몽하면서 애국애족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신 곳이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기에 가장 많은 독립자금을 지원한 곳도, 또한 IMF 외환위기 당시 국내로 가장 많은 성금을 보낸 곳도 LA 동포 사회라는 사실이 LA가 도산 정신이 살아 있는 애국애족의 고향임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 민족이 6.25 전화의 잿더미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것처럼, 1992년 LA 폭동시 잿더미 속에서 '코리아 타운 재건의 기적'을 이뤄냄으로써 미국인들로 하여금 이상과 비전이 있는 민족, 불굴의 혼을 갖고 있는 민족으로 우리를 재평가하게 한 것도 성실과 애국애족의 도산 정신이 교포들의 가슴 속에 긍지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2세 교육을 통해 한미 간에 정신적 가교 역할을 수행하면서 민족 혼을 함양해 온 '남가주 한국학원'이 재정난으로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하나의 천을 태워도 그냥 천을 태우는 것과 태극기가 그려진 천을 태우는 것은 천지차이다'라는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교계와 언론계는 물론 전 교포사회가 발벗고 나서서 한국학원 재건의 위업을 달성한 것은 LA가 근면, 성실, 정직, 애국애족의 기독교적 윤리관이 확고히 뿌리 내린 정신적 고향임을 말해 준다. 

제네바와 LA 근무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기독교적 윤리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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