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병도 군인인데...

상병도 군인인데...

[ 예화사전 ]

안현수 목사
2015년 11월 10일(화) 16:39

1977년 8월 29일 월요일 나는 왕십리역에서 입영열차를 타고 논산훈련소로 향하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군대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2년이 지난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가야하는 마음은 무거웠다.

지금도 가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면 그 때가 생각 난다. 늦은 나이에 군대에 입대한 나는 정말 애로사항이 많았다.

지금도 군대 구타사고가 종종 발생하지만 당시 동생 나이 선임에게 구타를 당하고 기합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홀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그러기에 나는 청년들에게 가능한 군대는 제 나이에 가라고 권한다.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그 시절 나는 논산훈련소 29연대 1중대 4소대에서 4주간 군사기본 훈련을 잘 마치고 후반기 교육을 받기위하여 당시 대전에 있는 육군 병참학교를 향하여 갔다.

모든 병력이동이 밤에 이루어졌던 그 때에 논산역을 출발한 우리는 서대전역에서 내려 하늘같은 기간병의 인솔로 무거운 더블백을 메고 두려움 속에 병참학교에 도착하였다. 한밤 중에 내무반 통로에 쪼그려 앉은 우리는 그곳에서도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정신없이 하고 군기가 확 들어 긴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등병 계급을 단 내무반장이 우리들의 신상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너희들 중에 가족이 군인, 국회의원, 교수, 경찰 등 사회 지도층이 있는 사람 손을 들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내무반장도 당시 공화당 국회의원 아들이었다.

나는 그런 부류에 속한 자가 아니기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는데 내 앞에서 어느 동기가 손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무반장이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 계시냐?" 그러자 그 친구는 "형이 군인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계급은 어떻게 되고 어디 근무하시냐?"고 다시 묻자 그 착하고 순수한 동기는 "예, 강원도에 근무하시고 계급은 상병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 순간 "뭐야? 상병? 이 새끼가 누굴 놀려"하면서 사정없이 그 동기를 패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웃지도 못하고 그 장면을 지켜만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내무반장의 물음에 맞는 대답을 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맞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상병도 군인인데 말이다. 꼭 장군과 대령만 군인인가? 지금도 그 친구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이 웃지 못 할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증인 중 한 사람이 나처럼 늦게 입대한 친구이자 군대 동기인 신당중앙교회 정영태 목사이다. 그래서 둘이 만나 군대시절 이야기를 하면 가끔 그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그러나 군대라는 곳이 원래 이런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리 대학원을 졸업하고 입대한 똑똑한 친구라도 고문관이 되는 곳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상병도 군인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 순진한 전우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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