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도 웃으실 기도, '우리 낙지'

하나님도 웃으실 기도, '우리 낙지'

[ 예화사전 ]

안현수 목사
2015년 11월 04일(수) 15:08

내가 모리타 히데오라는 일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는 1970년대 초 모교인 장로회신학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다. 당시 이종성 학장의 추천으로 유학을 온 그는 사회자의 요청에 따라 자기소개를 하였다.

자신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어느 날 예수님을 영접해 은혜를 받고 목사가 되기 위하여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보면서 '유학을 하려면 미국도 있고 유럽도 있는데 왜 일본을 싫어하는 한국으로 왔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와 교제를 나누면서 일본이 과거 우리나라에 저지른 만행에 용서를 구하고 싶었고 한국교회가 일본교회 보다 크게 부흥하여 한국교회 성장 비결을 배우기 위해서 유학을 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내가 군에 입대하여 군종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도 면회를 와서 저녁예배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그가 공부를 마치고 우리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내가 섬기던 광성교회 후원으로 자신의 나라인 일본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다.

원래 성격이 여린 모리타 목사는 파송 예배를 드리면서 펑펑 울며 인사를 하였고 그를 파송하는 교인들은 뜨거운 박수로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일본 미토라는 곳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를 시작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는 그 어려운 일본 선교를 열심히 감당하였다. 3년 후 내가 방문했을 때 단 한 명이 등록해 예배에 참석한 것을 보고 일본 선교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경험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내가 대학부 학생들을 인솔하여 겨울 신앙수련회를 떠났을 때, 결혼한 부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그가 수련회 장소까지 찾아왔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수련장 관리집사 집에서 차려준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식사 후 관리집사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부부가 일하는 사이 아기가 뜨거운 방바닥에 혼자 있다가 이마를 데어 상처가 났는데 안수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서 오신 모리타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아기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관리집사는 좋아하면서 주를 기쁘시게 하라는 뜻으로 '낙주'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면서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와 모리타 목사는 아기의 머리를 같이 안수하며 기도를 시작하였다. 문제는 이때 발생했다. 모리타 목사는 아기의 이름을 잊었는지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하나님, 우리 낙지가 불에 탔습니다. 고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도 낙주 아버지 엄마도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도 기도시간이니 크게 웃을 수도 없고 참으려니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기도가 끝난 후 낙주는 자신이 졸지에 낙지가 된 것도 모르고 예쁜 눈을 멀뚱멀뚱 거리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낙지가 불에 덴 것도 아니고 타버렸으니 그날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도 웃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낙지를 태운 모리타 목사는 지금도 나리타 공항 근처에서 열심히 선교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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