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용기

진정한 용기

[ 예화사전 ] 예화사전

안현수 목사
2015년 10월 05일(월) 18:25

암울했던 유신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나는 4년 동안 반복되는 휴교조치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당시 대학가는 경찰서 정보과 형사는 물론 중앙정보부 요원들까지 학교에 들어와 학생들을 감시하던 살벌한 시절이었다.

1975년 4월 월남이 패망하고 유신독재에 대한 항거가 거셀 때 나는 졸업반이었다. 지금은 기도하고 공부하고 나중에 힘을 모아 데모를 하자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유일하게 함께한 친구 광현이와 함께 필자는 영락교회로 향하였다.

우리 일행은 기도회를 갖고 어깨동무를 한 뒤 "유신철폐"를 외치며 명동을 향해 뛰어 갔다. 그러나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백병원 앞에서 지키고 있다가 우리 모두를 소위 '닭장차'라고 말하는 경찰 호송 버스에 태워 인근의 중부경찰서 유치장으로 이동시켰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경찰서 마당에 우리를 내려놓은 기동대원들은 "저놈들 혼을 내야한다"는 말과 함께 양쪽으로 줄을 서서 그 사이를 통과하는 우리를 사정없이 곤봉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고개를 숙인 채 무수한 매를 맞으며 지하 유치장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그곳은 더 심한 고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동대원들은 "무릎을 꿇고 시멘트 바닥에 이마를 박으라"는 말과 함께 사정없이 발로 밟고 곤봉으로 때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방금 전 유신철폐를 외쳤던 우리는 누구하나 찍소리 못하고 숨을 죽이고 매를 맞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중앙정보부 학원담당 직원이 유치장에 들어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희 중에 전주고등학교 나온 놈 있어?" 아마 자기가 나온 학교 후배가 있는 가 찾는 모양이었다. 아무런 응답이 없자 전주 출신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있어도 그 상황에서 누가 대답 하겠는가 마는 그 순간 우리를 '빵' 터지게 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술 먹고 길에서 소변을 보다가 경범죄로 들어온 취객이 우리 유치장에 있었는데 "내가 전주다. 어쩔래"라고 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중앙정보부 직원은 얼굴이 벌개졌고 경찰들은 더이상 못 떠들게 사정없이 때렸다. 그런데 그렇게 매를 맞은 그가 우리가 신학대생 인줄 알고 우리를 위로하기 위하여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경찰이 "너희들 예수 믿는 놈들이 데모나 하고 공산당이 쳐 내려오면 제일 먼저 환영할 놈들이야"라고 말하자 후배 박천민이 벌떡 일어나 "말 조심 하십시오. 우리 기독교는 공산당을 제일 싫어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 이놈 봐라"하면서 여러 경찰이 달려들어 발로 밟고 곤봉으로 사정없이 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선배인 나를 비롯한 누구 하나 만류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닥칠 폭력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라"는 찬송을 부르며 독재반대를 외치던 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천민이가 미국에서 목회를 하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아픔을 겪으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 때 그 시절 그의 진정한 용기에 동참하지 못한 나의 모습에 선배로서 너무나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안현수 목사 / 수지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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