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체제 불변, 사회는 급변

北…체제 불변, 사회는 급변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9월 08일(화) 14:18

김명배
前 주 브라질 대사ㆍ예수소망교회


북한 수령독재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수령신격화'이며, 폐쇄와 고립은 수령신격화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생존수단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정보화, 개방화 시대에 북한 위정자들이 체제 유지를 위해 아무리 폐쇄, 고립을 고집해도 외부로부터의 정보유입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1990년대 초 극심한 식량난으로 인해 배급제가 폐지되고 주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식량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하면서 북한 사회는 여행허가제 완화, 국경 밀수, 정보 유입, 부패 확산 등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게 됐다. 

가장 큰 변화는 시장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당초 북한 당국은 체제 유지 차원에서 시장의 출현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으나 수 백만 명이 굶어 죽는 절박한 상황에서 생존에 매달리는 주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역시 체제 유지 차원에서 시장을 합법화 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 위정자들은 마지못해 시장을 허용하면서도 시장 자체를 체제친화적으로 개편하는 비상수단을 동원하면서 체제 수호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 결과 오늘날의 북한 시장은 체제위해적 요소와 체제친화적 요소가 병존하는 이율배반적 구조로 정착하게 됐다. 외화벌이 사업을 관장하는 지배계층이 신흥 시장세력인 '돈주'와 결탁한 북한판 정경 유착이 시장 유통구조를 장악하면서 차별성을 바탕으로 하는 북한 사회의 계층구조가 시장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시장수익의 상당 부분이 통치자금으로 상납되는 부패구조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인민은 시장구조의 최 밑바닥에서 떡 고물이나 챙기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 오늘의 북한 시장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시장출현이 주민들의 경제적 위상과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거리가 멀다. 신흥 시장세력은 부를 축적할수록 더욱 지배계층과 밀착하면서 당초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체제친화적 세력으로 변신하고 있다. 다른 한편 시장을 체제친화적으로 개편코자 하는 당국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제도 도입 이후 변화의 물결이 북한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단순한 장사의 수준을 넘어 교역, 사설금융, 부동산 거래, 인력조달 등 다양한 경제활동은 물론 주민접촉, 정보교환, 자본주의사조 확산 등 정치, 사회 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면서 북한사회가 폐쇄와 고립에서 개방과 교류로 전환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오늘날 북한사회에서 시장은 이미 주민 생활의 필수적 요소로 확고히 뿌리를 내렸으며, 당국이 체제 유지를 위해 시장을 폐쇄하는 경우 주민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체제 유지 자체가 위협을 받을 정도로 시장이 이미 북한사회 내부에 필수불가결의 요소로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됐다. 

북한의 경제정책의 큰 흐름은 '반 시장'과 '반 개혁'으로 집약할 수 있다. 시장이 인민의 생사와 직결되기 때문에 북한당국은 마지 못해 시장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체제친화적으로 개편하면서 실질적인 시장화는 사실상 거부해 왔다. 개혁, 개방 문제에 대해서도 시종일관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면서, 오히려 개혁, 개방을 빙자해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를 탈취하는 이른바 '개혁, 개방 장사'에 이용하면서 '핵 장사'에 버금가는 수익을 올렸다. 

아무리 체제우선이지만 북한당국이 반 시장, 반 개혁에 매달려 임기응변식 편법에 의존하는 사이에 북한경제는 복구가 불가능한 침체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북한 위정자들이 시장 제도 정착과 관련해서 가장 우려하는 것이 이른바 '장마당 세대'의 출현이다. 1990년대 초 북한경제가 완전히 무너져 경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을 때 태어난 장마당세대는 국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없이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오로지 시장에 의존해서 생존을 유지해 온 세대이므로 이념, 사상, 교양사업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자본주의, 개인주의 사고가 팽배한 세대이자 김정은 3대 체제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어 있는 세대이다. 지배계층의 공포정치에 대한 위기의식과 장마당세대의 자본주의적 사고가 응집되어 수령독재체제를 폐기하고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하는 공감대가 형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위정자들이 마지 못해 수용한 시장이 집단지도체제로 이행하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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