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의 회심

아주머니의 회심

[ 기고 ] 독자투고 수필

이종화 목사
2015년 08월 11일(화) 16:26

"아줌마는 교회 다닐 팔자야!"
 
점집 드나들던 동네 아주머니 이야기다. 벌써 10년이 훨씬 넘은 케케묵은 이야기이지만 과연 지금 교회를 다니고 있을까? 교회 간다 간다 한 세월이 흘러 10년이 넘었건만 공염불에 불과했다.
 
"어휴, 그 여편네 말을 어떻게 믿어? 믿지 말엇! 변덕이 죽 끓듯해."
 
아주머니를 잘 아는 동네 몇 십년지기들이 하나같이 늘어놓는 입담이다.
 
"어머나, 목사님 나오셨네요. 근데 이게 뭐예요?"
 
"날 더운데 일하느라 고생이 많죠? 이거 시원하게 마시고 일하세요."
 
작년 8월 중가교회 부임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약품 전도가 연결되었다. 전도할 때 빈손으로 가기 멋쩍다. 약품은 사람들을 만나는 촉매제다. 파스며 소화제, 진통제, 변비약 등등 주민들이 선호하는 약가지들이다. 한창 뜨거운 여름날에는 드링크제와 알약도 지원받는다. 휴대용 아이스박스에 담아 가지고 가면 목사님이 드링크 가져오시는 줄 먼저 알고 일손을 멈춘다. 포도밭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예수님 믿으라고 교회 다니라고 슬쩍 말을 건네고는 자리를 뜬다. 또 축복기도를 해주면 마다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어느날 아주머니가 사택을 찾아와 이야기를 한다.
 
"목사님, 남편이 말을 더럽게 안들어요. 허락받기 위해 교회 가도 되냐고 좋게 좋게 말하니까 들어 처먹질 않아요. 내가 한 번 세게 들이받을까봐요."
 
동네에서 꽤나 드센 아주머니다. 어떤 분은 깡패라 부른다. 몸집은 작아도 무척 다부지다. 함부로 덤볐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당장 열매가 없어도 약품 전도는 계속된다. 포도순을 딸 때, 봉지를 쌀 때, 김을 맬 때 때를 맞춰 이 밭 저 밭 골짜기 깊은 곳까지 다닌다. 구충제도 가가호호 나눠주며 집안 내력을 살핀다. 새벽에 주민 명단을 놓고 불러가며 기도하고는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어느새 발걸음은 또 그 아주머니 밭에 다다랐다. 포도밭 가에 깻모종을 심고 계셨다. 늘 하던대로 드링크를 건넸다. 아주머니는 축복기도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속내를 털어놨다.
 
"목사님, 어찌 그럴 수 있죠? 법정에 가는 도장 좀 찍어 달라 했더니만 그 권사님 왜 그러시죠? 평소 어려워도 신앙으로 사시는 모습 보며 존경했는데, 나한테 이럴수가? 내가 교회 나가도 영동읍내에 있는 교회 나가지 중가교회는 절대 안 갈거예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다. 며칠 전 만났을 때 남편이 목사님 하시는 거 보니까 교회는 좋은 거구나, 목사님 봐서라도 너 교회 나가야 되겠다고 남편 허락이 떨어진지라 상심이 더 컸다.
 
"권사님, 어찌 된 일이에요? 내 그렇게 공들여 전도하는 거 아시잖아요. 권사님 때문에 우리 교회 안 나오겠대요."
 
자전거로 동네를 가로질러 반대편 끝에 있는 권사님 밭으로 내달렸다. 팔순이 가까운 권사님이 쪼그려 앉아 김매기 하는데 답답해서 쏟아내고는 함께 손잡고 눈물로 기도하였다.
 
열흘 후 장모님 천국환송식을 마친 바로 다음 7월 19일 주일아침이었다. 이미 예배는 시작되어 경배의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일찍 오셔서 기도하던 권사님이 보이질 이는다. 잠시 후 찬송을 인도하던 나는 갑자기 눈시울이 불거졌고 목이 멨다. 예배당 문이 열리고 권사님이 들어오시자 이윽고 그 아주머니가 서먹한 얼굴로 뒤따라 들어오는 게 아닌가. 무슨 영문일까? 법정 갈 일도 잘 처리되었고, 권사님도 자기 때문에 한 영혼 잃을까 걱정되어 금식도 하며 기도한 끝에 그 아주머니를 찾아가 데려온 거란다.
 
일하시고 행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 분의 시간에 적절히 사람들을 세워 하나님의 구원 열망(Missio Dei)을 성취해 가신다. 어려운 여건 속 미자립교회에서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는다고 누가 뭐랄 사람 있을까? 하지만 주님이 이곳에 보내고 세우신 까닭이 분명하기에 오늘도 약가방 둘러매고 아이스박스에 드링크 채워 가가호호, 포도밭으로 달려간다. 벌써 삼 주째, 아주머니는 주일예배며 수요기도회를 빠지지 않는다. 예수님 영접 후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교회 다닐 때마다 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난다.

이종화 목사
중가교회ㆍ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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