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신비 앞에서 겸손해야

삶의 신비 앞에서 겸손해야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5년 07월 13일(월) 17:52

<네이든, 감독 : 모건 매튜스, 드라마, 12세, 2014> 

<스포일러 있음>
'네이든'은 장애인 영화로 자폐장애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휴먼드라마다. 영국 BBC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뷰티플 영 마인드'에서 소개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화제의 인물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2위를 차지했던 다니엘 라이트윙이다. 실화이기 때문에 흡입력이 있었겠지만, 굳이 실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해도 영화의 스토리텔링에서 분출하는 감동의 힘이 대단하다.
네이든(아사 버터필드)은 자폐장애자로서 특징적인 모습을 보인다. 엄마와의 피부접촉마저도 거부할 정도로 폐쇄적이고, 특별히 소수(素數)에 집착하고, 모든 것을 수와 패턴으로 인식한다. 비록 수학에서 천재로 인정을 받았지만, 소통능력이 결여된 네이든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살갑지 않다. 게다가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또 세상과 소통하도록 이끌어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로 네이든은 자기만의 세계에 더욱 침잠하게 되는데, 그를 다시 한 번 세상 밖으로 이끌어준 사람은 수학 선생님이다. 그 역시 과거 수학천재로서 이름을 날렸던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다발성 경화증으로 술과 약물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의 도움으로 네이든은 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하게 된다.

영화 '네이든'은 수학천재이지만 자폐장애를 갖고 있는 네이든이 자신의 세계에만 몰입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인과 감정적으로 소통하고 또 환경에 적응하며 살면서 수학천재의 기량을 발휘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네이든은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감정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영화는 자폐 장애를 가진 네이든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사건은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네이든이 보여준 모습을 통해 표현되었다. 대만에서 가진 합숙훈련 기간에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준 장메이(조양)가 영국에서 열린 시험 전날 밤을 네이든의 방에서 함께 보낸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대표 인솔책임자인 삼촌에게 심한 꾸지람을 듣는다. 이 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장메이는 시험도 치르지 않고 떠나고, 네이든은 격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 오직 이 시험에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네이든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음에도, 네이든은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험장을 박차고 나온다. 삶의 목표였던 시험을 중도에 포기하게 만들 정도로 그를 사로잡은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오직 수와 패턴으로만 세상과 소통했던 네이든을 생각한다면, 이런 모습은 관객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네이든에게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수학으로 풀 수 없는 일을 경험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죽음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네이든은 장메이와의 사랑에서 생기는 몸과 마음의 변화와 느낌에서 수학적인 능력의 한계를 깨닫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왜 마음이 아픈지도 네이든에겐 풀 수 없는 문제였다. 사랑과 상실의 고통이라는 문제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이 장면은 그야말로 폭풍 감동을 일으킨다. 이 문제의 의미와 답을 깨우쳐준 사람은 그동안 네이든이 수학을 모른다며 무시해 왔던 엄마였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경험이 있는 엄마가 사랑이 무엇이고 또 사랑의 상실감이 무엇 때문에 오는 것인지를 설명한다.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고 또 더해주는 일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아픈 까닭은 사랑하는 그만큼 가치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라고. 이 말을 들은 네이든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서 그동안 모든 피부접촉을 거부했던 엄마의 손길을 받아들인다. 결국 네이든이 자폐장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수학으로도 풀 수 없는 문제. 곧 사랑과 죽음(사랑의 상실)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장애의 한계만을 보여주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은유로 읽을 수 있는데, 다시 말해서 자폐장애자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통해 자기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세상과 소통하며 살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우리가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에만 몰입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있다는 확신과 그 확신에 근거해서만 세상을 보는 폐쇄적인 시각 때문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한계를 인정하기보다는 언젠가는 풀릴 것이라는 낙관적인 태도로 자신의 확신에 영생의 힘을 부여한다. 이렇게 되면 결코 바람직한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한계 앞에서 솔직해질 때,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분출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영화에 등장하는 또 다른 자폐장애를 갖고 있는 수학천재 루크에게서 볼 수 있듯이, 자기 밖의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상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 힘으로 풀 수 없는 삶의 신비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 이번호를 끝으로 '말씀 & MOVIE'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4년 4개월 여 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집필해주신 필자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