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바위 내려놓기

마음 속 바위 내려놓기

[ 주혜주 교수의 마음극장 ] 마음극장

주혜주 교수
2015년 07월 08일(수) 10:13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이란,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나 자신이 '지자'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유난히 바다나 폭포를 좋아하는 터라, 18년 1개월의 간호사 생활을 마감하자마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이아가라 폭포에 꼭 가보리라 다짐했다.
 
드디어 어르신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나이야 가라'폭포 앞에 섰다. 천둥 같은 소리에 귀가 먹먹해지고, 거대한 폭포 앞에서 나 자신은 한없이 작아졌다. 바로 그때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내 안에서 벌어졌다. 모든 것을 싸안고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자연 앞에 서고 보니 문득 '나의 모든 행동이 정말 최선이었을까?'라는 물음이 마음 저 깊은 속으로부터 떠올랐다. '왜 그리 빡빡하게 살아왔나?', '만약 병원으로 돌아간다면 또다시 그렇게 살까?'라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지나온 세월,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치열하게 그리고 열심히 간호를 했다. 간호에 대한 나의 열정과 그에 따른 나의 행동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의사들과의 관계에서 나름 간호사의 권리를 지키느라 갈등을 많이 겪었다. 이어서 간호사들과의 일들도 떠올랐다. 나름 자상하려 애썼지만 아마도 무서운 수간호사였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간호사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동에 대해선 호되게 야단쳤다. 간호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처절할 정도로 엄격했다. 일명 '간호 사수하기'였다. 한 터럭의 미련도 남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열정적으로 간호를 해왔기에 후회도 회한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장대한 폭포수 앞에서 뜻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뭐가 잘못된 거지?'라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곧 '그래도 최선이었어',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중얼거리면서 서둘러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슬렀다. 이런 감정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떠나서도 지속되었고 미시간 호숫가를 걸으며 친구에게 당혹감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러자 친구는 이민 와서 겪은 차별 때문에 억울해하고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이웃이 해준 애기를 들려주었다. "아무리 속상해 해도 네 현실은 바뀌지 않아. 이민자들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탓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봐. 나 같으면 어떻게 하면 더 잘 정착할 수 있을지에 주력하고 살겠어."
 
그렇다. 아무리 상대방이 바뀌기기를 원해도 상대방이 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소관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변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계속 '변해라, 변해라'하는 것은 마치 내 앞에 놓인 커다란 바위를 껴안고 씨름하는 것과 같다. 힘만 들 뿐 바위는 꿈쩍도 않는다. 이렇듯 현실에서는 나의 소망이나 의지와 상관없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현실이 실제와 다르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가진 태도와 문제에 대해서 지적하고 바꾸라고 해도 그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그 상태에서는 내 자신의 무엇인가를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그들의 변화는 그들에게 맡기고, 나 자신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바다 같은 미시간 호수 앞에서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서, 비로소 나이아가라 폭포가 진원지인 생각의 폭풍이 조용히 잦아들었다. 덕분에 18년의 간호사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폭포와 호수를 바라보면서 점점 더 지혜로워진듯하니 역시 나는 '지자요수'에 속하나 보다!  


주혜주 교수/경인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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