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

[ 주혜주 교수의 마음극장 ] 마음극장

주혜주 교수
2015년 07월 02일(목) 10:24

세상에는 하늘이 내리신 관계가 있다고 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범인(凡人)들의 눈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신부와 수녀 관계가 또 그렇게 묘하다고 한다. 사실 진위여부를 떠나서 그만큼 힘들다는 표현일 게다. 여기에 간호사와 의사의 관계도 추가하고 싶다. 그만큼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가 어렵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 의한 결론이다.
 
병원에서 근무할 때 간호는 재미있었다. 수술실에서도 그랬고, 특히 정신과에 와서는 환자들과 지내고 좋은 동료들과 어울려 다니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반드시 같이 일해야만 하는 옆 동네와의 인간관계가 문제였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아니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동료, 의사들과의 관계가 늘 걸려 넘어지는 돌, 아니 커다란 바위였다.
 
물론 의사와의 관계가 늘 살벌한 것은 아니었다. 레지던트(수련의)를 끝나면서 간호사들에게서도 많이 배웠다며 선물을 건네주던 의사, 정말 감동이었다. 지금은 정년퇴직하신 정신과 교수님도 잊지 못할 의사시다. "주 수간호사의 사직은 정신과의 손실이요, 정신간호의 손실이니 잠시 쉬고 나서 정신간호사를 꼭 다시 하세요"라며 집근처까지 오셔서 따로 송별회를 해주셨다. 치켜세워주느라 하신 말이었겠지만, 지쳐서 바닥을 치고 있던 터라 눈물이 핑 돌 정도로 큰 격려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레지던트 기간 동안 친하게 지내다가 전문의가 되어 병원을 떠난 후에도 계속 만나고, 지금도 여행을 같이 다니는 소울메이트 여자 의사들도 있다.
 
그 당시로서는 의사들과 같이 일하면서 생기는 힘겨움의 원인이 의사들의 일방적인 횡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등의 대부분이 간호사와 의사들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요즘 남자 간호사들이 늘고 있는 간호계의 변화를 보며 깨닫게 되었다.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의 전유 직종인 간호직에 남학생의 수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아직은 여전히 소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요즘도 대학의 모든 편의시설이 여전히 여학생 위주다. 여학생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누리는 편리함은 곧바로 남학생들의 고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남학생들의 입장과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호학과 남학생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듣고 있노라니, 오랫동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여겼던 의사들이 생각났다. 모든 갈등은 서로의 입장을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것이지, 일부러 힘들게 하려는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었을 거라는 깨달음이 생긴 것이다. 역지사지.
 
인간관계 갈등의 열쇠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인디언 속담에 "그 사람의 입장에 대해 충분히 알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남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리라.

주혜주 교수/경인여자대학교 정신간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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