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H의 후원과 그 영향

KNH의 후원과 그 영향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들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7월 01일(수) 10:08

한아협 산하 각 시설들은 도시빈민지역이나 농촌에 위치했다. 그래서 늘 시설 설비나 운영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청계천 지역이나 남양만 지역의 어린이집들은 그 건물 건축이나 운영 모두 KNH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아들의 점심 제공도 KNH 후원으로 가능했다. 1985년 광야선교원은 KNH 후원으로 원아들의 점심이 해결되면서 선교원 폐원 위기를 한 차례 넘기기도 했다. 탄광지역에 있는 나전유아원에서도 KNH 후원으로 원아들에게 점심이 제공됐다.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은석유아원이나 독정어린이집 보육료는 KNH 후원으로 저렴하게 책정됐으며, 유아원 졸업생들의 연장 프로그램으로 방과후 공부방도 운영됐다. 그래서 한아협 산하시설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 

정기적인 결연후원 이외에 특별후원금 명목으로 산하시설의 건물 보수, 신축, 부대시설 설비비가 지원되기도 했다. 남양만 지역에서는 KNH 후원으로 어린이집 건물이 신축됐고, 동인천산업선교센터 산하 도화은석유아원과 은석유아원도 건물이 신축됐다. 남양만 호암무지개어린이집은 독일 후원자 크레임 씨의 후원으로 건축됐다. 호암무지개어린이집 원장 차기재 목사는 1976년 2400만 원을 지원받아 선교관을 건축함으로 교회예배도 가능해졌다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고마움의 감동을 전한다.(2014. 5. 12 면담) 1985년 KNH 후원으로 샘터 유아원에 식당이 마련됐고, 원아들의 점심 제공이 가능해졌다. 

이외에도 1987년 특별지원금으로 부평직업훈련원 타이프라이터 20대가 구입됐다. 이 타이프라이터는 훈련원생들이 자격증을 취득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1988년 KNH 특별후원금으로는 서울후생학원 시설 보수, 영송유아원 지역 사회 주민을 위한 공중목욕탕 건립, 샘터유아원 상수도 시설과 지하보일러시설, 민들레유아원 공부방 설치를 위한 아파트 구입, 희망꾸러기집공부방 장소 임대가 가능해졌다. 또한 장소가 없어서 여기저기 흩어져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섬나유아원에 특별후원금이 지원됐다. 이로써 섬나유아원이 속한 대전빈들교회 교회건축도 가능해졌다. 그런가하면 은석유아원 영아프로그램 등 특별 프로그램을 위한 후원도 있었다. 

1989년 5월에는 독일 KNH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산하시설 아동 그림대회가 열렸다. 유치부와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부로 나누어 1, 2, 3등과 특선, 입선 입상자가 발표됐다. 심지어 KNH 후원이 5년 이내에 종료될 것이라고 통보됐던 1990년에도 구세군 부평직업훈련원 훈련원생들의 후원금은 상향 조정됐다. 훈련원생 대부분이 야간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지원되는 후원금 40마르크로는 등록금이 충당되지 않았다. 그래서 KNH에 80마르크 후원이 요청됐고, KNH에서는 흔쾌히 후원해 주었다. 덕분에 훈련원생들은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KNH 후원금은 교사 봉급, 물품 구입비 등 운영비로도 사용됐다. 1987년 후원이 시작된 대구 달구벌어린이집에 지원된 KNH 후원금은 탁아방과 공부방 운영자금으로 30~40%가 사용됐다. 한아협 산하 시설들에게 주어진 KNH 후원금은 그 시설들의 설립과 운영 전반에 대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 지역사회 프로그램 개발도 가능해짐으로 KNH 후원은 한아협 산하시설 뿐 아니라 시설이 위치한 지역 주민들에게도 그 혜택이 주어졌다. 결과적으로 KNH 후원이 없었다면, 유아교육이나 지역사회 선교를 시도할 수 없었거나 시도했더라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시설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지원된 KNH 후원금은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 같았다. KNH 후원금이 한아협 산하시설에 미치는 영향력은 한아협 산하시설들의 사업을 통해 더 잘 드러난다.
 /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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