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은 누구인가?

간신은 누구인가?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5년 06월 09일(화) 08:45

<간신> 감독 : 민규동, 드라마, 청소년관람불가, 2015

연산군만큼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많이 사용된 인물이 있을까? 모친인 폐비 윤씨의 죽음만으로도 이미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아버지 성종은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연산군의 폭정은 극적인 장면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하지 않다. 게다가 영화적인 표현에서 흔히 사용되는 폭력과 섹스는 연산군과 관련해서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 연산군을 다룬 영화 가운데 깊은 인상을 받은 영화라면 '왕의 남자'(2005)다. 이준익 감독은 놀이패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면서 연산군을 우회적으로 조명하였다. 이전의 영화들을 통해 연산군 개인의 가족사와 정치사적인 측면에서만 알아왔던 면과는 다른 점들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간신'은 연산군의 예술적인 재능과 광기가 어떻게 현실로 나타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었는데, 이점에서 또한 연산군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주로 연산군의 원한에 사무친 폭력행위에 주목했다면, '간신'은 연산군(김강우)의 성적인 일탈에 천착하여 폭정을 재현하였다. 특히 '흥청망청'이라는 말의 유래가 되는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 팔도에서 미녀로 소문난 여성들을 동원해서 연산군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려는 채홍 계획과 그 실행과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이 계획과 실현은 연산군의 욕망을 충족시켜줌으로써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스스로 왕 위의 왕이 되려는 간신 임숭재(주지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숭재는 성종의 딸이며 연산군의 동생인 휘숙옹주와 결혼한 사이로 연산군의 제부다. 조선 역사에서 간신의 대명사가 된 그의 모습을 조명하려는 것이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배우들의 노출이 심하고 또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압델라티프 케시시, 2014)의 동성애 장면을 차용한 듯이 보이는 격렬한 동성애적 장면 때문에 영화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연산군의 폭정과 성적 일탈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 그의 광기를 생각한다면 결코 불필요한 장면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관음증만을 충족시켜주려는 볼거리가 아니라 연산군의 광기 가득한 시각을 반영하는 이미지들이라고 생각하면 감상에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필자에게 영화적으로 아쉽게 느껴진 점은 후반부로 가면서 나타나는 간신 임숭재의 멜로 라인이다. 이 때문에 영화를 일관성 있게 감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신에게도 개인사적인 면에서 또 다른 모습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을까? 사람은 언제나 관계 안에서 평가된다. 누구에게는 악인이지만, 누구에게는 선인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간신의 양면성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시각은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관객의 시각이다. 관객은 간신을 간신으로 보기를 원한다. 그리고 사필귀정을 기대한다. 특히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렇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부조리함을 경험하며 사는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관객은 간신의 모습이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보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역사적인 사실과도 어긋나는 일을 굳이 그렇게 연출한 까닭에 영화는 전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관객의 영화보기는 방해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영화 전반부에서 다루고 있는 간신의 일면을 살펴보자. 영화가 정의하는 간신은 한마디로 왕의 올바른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왕의 욕구만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전념하는 벼슬아치다. 비록 정사와 관련한 일이라 해도 백성의 안녕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왕이 원하는 것만이 실현되도록 애를 쓴다. 예컨대 영화에서 간신은 누구에게도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연산군의 억압된 내적인 분노를 분출케 한다. 또한 채홍사가 되어 연산군의 성적 욕구와 취향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조선팔도의 미녀 만 명을 동원한다.

만일 간신에 대한 영화적인 정의에 이의가 없고, 또한 정치적인 맥락에서 영화를 본다면, 현실정치와 오버랩 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간신'의 결말에 대해 나타나는 불만은 어쩌면 현실정치 행태를 염두에 두고 감상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정치현장에는 간신들이 들끓고 있고, 그들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진실이나 국가의 미래 그리고 국민의 행복은 안중에 두지 않고 오직 대통령의 안위를 위해 그리고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위해, 다시 말해서 대통령의 눈치만을 살피면서 일하는 충견들이 너무 많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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