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미션 스쿨 사역의 어려움과 보람

<8> 미션 스쿨 사역의 어려움과 보람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

이준재 선교사
2015년 06월 08일(월) 19:20
▲ 화이살라바드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 위치한 스다에 파키스탄 초등학교. 건물의 큰 홀에서 여러 반의 학생들이 함께 앉아서 공부하고 있다.

선교가 오대양 육대주에 왕성히 전개되어 선교의 위대한 세기라 불리우는 19세기에 학교와 병원 사역은 중요한 선교 사역이었다. 교회를 세우기 어려운 지역에서도 의료와 학교 사역은 환영을 받았으며 한국의 선교 초창기에도 의료와 학교는 중요 선교사역이었다. 선진국에서 대학교육이 점점 보통 교육이 되어가고 있는 21세기에 아직도 많은 선교 오지와 낙후된 곳에서 병원과 학교 사역은 그 중요성을 잃지 않고 있다.

선교의 고전적 사역이라 할 수 있는 학교와 병원 사역은 파키스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세기 선교 초창기에 서구 선교사들이 파키스탄에서 학교와 병원사역에 많이 관여하였으며 한국의 첫 파키스탄 선교사였던 전재옥 선교사도 파키스탄의 신드주의 한 여자 고등학교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필자가 사역하는 화이살라바드의 낙후된 지역인 '다우드 나가르'에 가난하여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전임사역자가 1992년 개교한 스다에 파키스탄 초중고(우루드어 사용 학교)는 현재 710명이 공부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지역사회 발전과 복음화에 적지 않는 큰 기여를 하였다.

학교 사역에는 훈련된 교사, 공부에 열심인 학생, 과학실 등 갖춰야 할 것이 참 많다. 더욱이 파키스탄에는 교육부의 사립학교 간섭이 많아서 교육부 직원들을 잘 상대할 수 있는 매너있는 직원도 필요하다. 자연히 학생, 교사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낙후된 지역에서 실력있는 과학교사 찾기가 참 어려운데 우리가 사역하는 남중고의 한 과학교사에게 어려운 학교재정 형편에서 월급을 많이 주고, 석사 학위를 공부 중이어서 30분 먼저 퇴근할 수 있게 배려하였다. 하루는 긴 여름 방학을 마치고 개학이 내일인데 과학교사가 교장선생님과 함께 선교사 사무실에 찾아왔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그 교사가 오늘 학교를 사직한다고 하여 그 이유를 물으니 사례를 많이 주는 시내의 큰 사립학교에 간다고 하였다. 당황한 교장 선생님이 말하였다. "도끼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다"고. 이미 며칠 전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말레이시아에 일하러 간다고 학교를 그만두어 허둥대고 있는데 엎친데 덮친 격이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파키스탄에는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도로의 큰 찻길(서울로 치면 종로길은 아니어도 그 다음 중요한 길)에 큰 텐트를 치고 결혼, 장례식을 치러서 그 공공도로를 지나 가야하는 모든 차들이 돌아서 가는데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고 해외에서 온 사람들만 허둥댄다. 학교 사역에도 이런 유사하고 황당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서 미션 스쿨사역에 실망을 한적이 많았다.

그러나 보람도 참 많다. 한번은 시내의 큰 병원에 갔는데 한 간호사가 우리 미션스쿨을 졸업하였다고 필자에게 자랑스럽게 찾아왔으며 카라치의 큰 병원에도 미션스쿨에서 공부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간호사를 만났다. 그리고 정부 교육부에서 치르는 시험에 아주 높은 점수를 맞아 그 학생이 무슬림 학생였지만 부모를 불러 같이 감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제 미션 스쿨 역사가 20년을 훨씬 넘으니 코 흘리개 어린아이들이 성장하고 대학 교육을 마치고 교사로 섬기러 올 때 참 보람을 느낀다. 무엇보다 개종이 어려운 파키스탄에서 남녀 중고의 아침조회 시간에 필자가 예수님께서 왜 세상에 오셨는지 왜 돌아가셔야 했는지 설명하면 당장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도 눈을 크게 뜨고 진지하게 듣는 수많은 무슬림 학생들을 보면 미션스쿨 사역에 큰 기쁨을 느낀다. 이런 보람과 기쁨이 있기에 오늘도 섭씨 42-43도 넘는 파키스탄 사역지에서 기대와 소망을 갖고 사역하고 있다.

이준재 선교사 / 총회 파송 파키스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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