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이 대물림 되는 사회

악이 대물림 되는 사회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5년 06월 01일(월) 17:15

<악의 연대기> 감독:백운학, 스릴러, 15세, 2015

 <스포일러 있음>
아버지가 살인 용의자로 잡혀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슬피 우는 아이의 눈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할 때, 필자는 그 아이가 영화에서 장차 어떤 사람으로 분할 것인지 궁금했다. 제목에 착안하여 생각한다면, 그 아이의 악역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의 기대는 곧 이어지는 최 반장(손현주)과 그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영화의 초점이 옮겨짐으로써 이내 무너졌다. 큰 야망을 품고 살아온 최 반장은 승진을 위해선 불법을 행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마침내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승진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사건이 벌어졌다. 자신을 죽이려는 택시운전기사와 격투를 벌이다 오히려 살인자가 된 것이다. 정당방위로 일어난 일이라 경찰에 신고하면 되었지만, 승진 기회를 놓치게 하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사건이 자신의 과거 불법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 결국 사건을 묻어두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신이 경찰서 앞에서 크레인에 매달려 있는 채 발견되어 여론의 집중을 받는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최 반장에게 근접해오는 경찰 수사와 수사망에서 벗어나려는 최 반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스릴러로 전개된다.


택시기사 시신을 경찰서 앞으로 옮겨 놓은 용의자를 범인으로 간주하고 그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최 반장은 총기 사용을 남용함으로써 또 한 차례 악을 행한다. 여론에 밀려 서둘러 해결하려는 택시기사 살인 사건은 용의자가 살해됨으로써 종결되었지만, 최 반장은 맘을 놓을 수가 없다.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수사에 결정적일 수 있는 자료를 은폐한다. 이 정도면 악의 연대기라고 할 만한 사건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의 궁금증은 더해졌다. 도대체 감독은 그 아이를 영화 속 어디에 숨겨놓은 것일까? 그냥 그렇게 사라지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어딘가에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최 반장이 그 아이는 아닐까? 경찰신분으로 승진을 위해 불법을 행하고, 또한 연이은 불법행위를 숨기는 모습에 근거해서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었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면서 단서들을 찾아 탐문하는 과정에서 최 반장은 과거 살인 사건의 범인을 체포했던 일에 참여했던 경찰들이 모두 사망했고, 최 반장은 물론이고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서장까지도 살해 리스트에 포함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살인자의 아들'이 사건의 용의자란 사실도 밝혀진다. 이쯤 되면 최 반장과 관객의 마음은 하나가 되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장르에 맞게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하는 부분은 딱 여기까지다. '살인자의 아들'이 모습을 드러낸 후로 영화에서 스릴러의 모습은 급격하게 사라진다. 이미 오래 전 일이니 더 이상의 살인을 멈춰야 한다는 최 반장의 요구와 '살인자의 아들'에 의해 계속되는 복수 행각은 극의 예상을 뛰어넘으려 시도한 몇 차례의 반전을 거듭하면서 대단원을 맞는다.


영화는 최 반장의 연속적인 불법 행위에 시선을 집중함으로써 최 반장에게서 일어나는 '악의 연대기'를 추적했다. 관객의 관심을 돌리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몇 차례의 반전을 통해 진실을 인지하도록 함으로써 일어날 충격을 예상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대만큼 충격적이진 않았다. 결정적인 흠은 반전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잦은 플래시백 장면에 있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영화의 흐름과 긴장감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연기를 충분히 살려내는 연출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말하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 제목이 환기하는 악의 대물림 현상을 말한다. 악의 대물림이란 악은 악을 경험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아버지에 대한 부당한 행동에 분노한 아들이 살인을 감행하고, 또 불법을 자행하는 경찰들의 불의 때문에 아버지가 사형 당한 사실에 분노한 아들이 살인자가 된 사실을 일컫는다. 이 현상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 대한민국 사회는 불평등하며, 정치인들을 포함해서 사회의 각 분야에서 부정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고, 정의가 상실되었다.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여론의 눈을 피하기 위해, 혹은 승진을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불의를 묵인하는 구조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불의한 사회는 또 다른 불의를 낳게 하는 매트릭스일 뿐이다. 도올 김용옥이 한 강연에서 대한민국의 시급한 과제는 민주화보다 오히려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일이라고 역설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억울함과 분노의 정서로 가득하다. 치유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지만, 무엇보다 악이 대물림되지 않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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