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과 직업병

달인과 직업병

[ 고훈목사의 詩로 쓰는 목회일기 ] 마음극장

주혜주 교수
2015년 05월 20일(수) 09:58

직업병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지 직업에 오래 종사함으로써 그 직업의 특수한 조건에 의해 생기는 병'이다. 하지만 요즘은 굳이 병이 아니라도 직업의 특정 조건으로 인해 생기는 특이한 행동이나 습관까지 포함해서 널리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각양각색의 직업병이 회자되고 있다. 연예인 직업병, 운동선수 직업병, 의사직업병, 주부 직업병은 물론 대통령의 직업병 등.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고 손꼽는 예술가들이 겪어야 하는 직업병 또한 만만찮다. 실제로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날카로운 고음을 귀 가까이에서 자주 듣기 때문에 청각에 이상이 많다. 물감을 늘 만져야 하는 미술가들은 물감에 들어 있는 중금속에 중독되기도 한다.
 
정신과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몇 가지 직업병 증세가 생겼다. 예를 들어 출입문만 보면 흔들어 보게 된다. 혹시 열려 있지 않은지 확인하기 위한 자동적 행동이다. 또한 과도나 가위처럼 위험한 물건을 보면 자동적으로 치우려고 한다. 정신과 병동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환자들이 과도를 소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여 사과나 배 같이 껍질을 깎아야 먹는 과일이 많이 나는 가을철에는 치료자들이 과일을 깎아 주느라고 엄청 바빴다. 그 시절 과일 깎는 기계가 우리의 로망 중 하나였다.
 
병원에 있을 때는 병원 특성에 걸맞은 특정한 행동이 나타나더니, 학교로 옮긴 후로는 여지없이 선생과 관련된 직업병이 나타났다. 어디서나 선생 기질이 발휘되어 말할 때 대상이 누구건 자꾸 가르치려 든다. 전화로 중국집에 음식 주문하면서도 마지막에 나도 모르게 "제가 시킨 음식을 정리하자면요"라고 얘기해서 옆에서 듣고 있던 가족들이 "허걱!" 하고 다 뒤로 넘어간 적도 있다.
 
이제는 정신간호를 전공한 세월이 30년이 훌쩍 넘었다. 전공이 정신간호라 하면 많은 사람이 '어이쿠, 내 속 다 들여다보겠네'라며 조금 긴장한다. 뭐 그런 직업병이 생겼다면야 지금 이렇게 살고 있겠는가? 일찌감치 미아리에 자리 펴고 앉아 떼돈을 벌었지!
 
직업병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분야에서의 경륜을 나타내는 상징이라는 생각에 싫지만은 않다. 아니 단순한 연륜을 넘어서 자기 일에 대한 깊은 애정 덕분에 생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상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직업에 오래 종사함으로써 그 직업의 특수한 조건에 의해 생기는 병'인 진짜 직업병은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직업의 특정 조건으로 인해 생긴 전문성을 지닌 유익한 직업병의 경우에는 직업병을 통해 오지랖 넓게 서로서로 도움을 준다면 우리 사회가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주혜주 교수/경인여자대학교 정신간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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