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회복이 필요한 때

영성 회복이 필요한 때

[ 사설 ] 사설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5월 18일(월) 18:15

근간에 모 대형교회 젊은 목사의 부적절한 행동, 소위 '몰카'범죄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짐으로 다시 한번 기독교인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언론의 표현대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선포하는 목사가 그런 부적절한 영상을 찍을 수 있는가? 어쩌다가 기독교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차제에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육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방안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로 지식을 전달하고 윤리 실천을 강조하는 식의 신학교육으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할 수 없다.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것은 신학이 아니다. 히브리어로 안다는 의미 속에는 친밀한 만남과 교제를 통하여 인격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신학함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아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신학함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는 과정으로 떨어지고 있다.

두 번째로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단하고 정직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윤리적인 가르침으로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배운바 지식대로 바른 삶과 인격을 전달할 수는 있어도 예수님의 모델을 따라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청난 훈련과 노력으로도 진정성 있는 기독교적 행함은 불가능하다.

이제는 신학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이다. 첫째로, 오늘 우리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영을 받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영적인 훈련이 신학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즉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서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게 하는 신학교육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성령충만으로 생명 사랑의 열정을 받는 신학교육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소중히 여기시고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열정을 주신다. 성령 님으로 충만하면 할수록 사람들을 사랑하는 열정이 강화될 것이다. 이제 신학교육은 생명 사랑의 열정을 배우고 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 돼야 한다. 생명 사랑이 몸에 밸 때에만 진정한 기독교적인 인격이 형성돼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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