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5월 18~23일

[가정예배]5월 18~2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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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15일(금) 10:40

월-만사형통 하리라

본문 : 삼상 1:1~20
찬송 : 384장

오늘 부른 찬송은 많은 성도들이 애창하는 찬송이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주 안에 있는 긍휼을 믿는 자에게는 늘 하늘의 위로가 넘침을 노래한 찬송이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은 이런 믿음으로 형통의 복을 누린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한나라는 여인이다. 한나가 살던 당시의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격변기였다. 사사시대의 느슨한 지파 연맹만으로는 침입해 오는 외적을 막을 수 없다는 국민적 요구가 하늘을 찌를 듯 하던 시대였다. 에게 해 출신의 블레셋이 팔레스타인 연안에 상륙하여 점차 내륙으로 지경을 확산하려고 쉼 없이 노력하는 때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한 사람을 준비시키는데 바로 사무엘이다. 성경은 사무엘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기록한다. 그만큼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라를 경영한 사람이기에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산출되는가?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부인이 있었다. 그런데 정실인 한나에겐 자식이 없고 브닌나는 자식을 잘 낳았던 탓에 정실 한나를 몹시 괴롭게 한 모양이다.
 
한나에게는 왜 자식이 없었을까? 한나가 자식을 잘 낳는 여인이었다면 역사는 어떤 길로 흘러갔을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당신의 뜻과 경륜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땅에서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협력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잘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은 마냥 평범한 사람일까?
 
아무 문제, 어떤 어려움도 없이 무난하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길이 잘 안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시대에 걸쳐 그분의 사람들을 고난과 여러 우여곡절 가운데 넣으신다. 특별히 혼돈의 시대일수록 하나님은 그분의 생명 노선에 선 사람을 일으키신다. 그것이 성경 인물사이기도 하다. 
 
주님은 혼돈스런 엘리의 시대에 한 사람 사무엘을 원하셨다. 그 사무엘은 어떻게 세워지는가?
 
한나의 고통과 괴로움 속 기도 가운데 주님은 당신의 길을 얻으신다. 우리가 주님의 길에 기꺼이 들어서고 그분의 역사에 협력하는 것은 이런 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의 신비여! 그 가운데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시는 주님을 본다.
 
이런 주님이 보이는 만큼 성도는 만사형통을 누린다. 우리 시대의 한나가 많이 나와야 한다. 일신의 안일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길을 보고 자신의 것을 드리는 사람들. 그들에게 하나님의 형통의 복이 임하리라.
 
오늘의 기도
 
오 주여! 우리 모두 기도하게 하시며 그 가운데 주의 길을 보게 하시며 우리를 기꺼이 그 길에 서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진숙 목사
거창영락교회

화-이스라엘에 임한 애통함
본문 : 삼상 6:19~7:2
찬송 : 91장

하나님의 언약궤가 돌아왔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패하였지만, 하나님은 홀로 블레셋을 이기시고 개선장군처럼 영광스럽게 귀환하셨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기뻐하며 승리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이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아 두려움으로 변하였다. 그들은 도저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자기들에게서 얼른 떠나시게 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벧세메스는 제사장 아론의 자손에게 주어진 레위인의 땅이었다.(수 21:16) 민수기 4장 15절에 레위인들이 언약궤와 같은 지성물을 만지면 반드시 죽을 것이 엄중히 경고되어 있음을 그들이 모를 리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약궤 안을 들여다보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다. 지식으로만 아는 것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수많은 백성의 희생을 겪고 나서야 몇 가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것, 그리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능히 설 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보편적인 반응이 있다.


불타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한 이스라엘 백성의 공포에 질린 비명이 그러했다.(출 20:19)
 
성전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이사야의 탄식이 그러했다.(사 6:5)
 
예수님의 인성에 가려진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고꾸라진 베드로의 고백이 그러했다.(눅5:8)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에게 침묵하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엄위하심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 홀로 블레셋을 격파하고 오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승리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깨우지 못했다. 벧세메스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애통함을 가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온 족속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애통하는 마음이 회복되었다. 그때에서야 그들의 완악했던 마음의 밭이 부드러워지고,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뿌려져 에벤에셀의 큰 구원을 향한 싹이 트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며 부르짖는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만연한 죄악과 부패, 물질숭배에 대해 우리는 무감각하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커다란 이웃의 아픔에 대해서도 우리는 함께 애통해하지 않는다. 이 애통함이 회복되지 않는 한 우리가 기다리는 에벤에셀의 큰 구원은 한국 교회에 임하지 않을 것임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거룩함을 발견하게 하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지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도원 목사
작은빛선교교회
(대구소년원)

수-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본문 : 창 50:15~21
찬송 : 304장

 
창세기 50장은 야곱의 죽음과 장례로 시작한다. 야곱은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땅 막벨라굴에 장사하라고 유언을 한다. 요셉은 아버지가 죽자 얼굴에 입 맞추고 운다.


온 가족이 크게 울고 애통하고 애곡한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장차 돌아갈 그들의 고향에 장사한다. 장례를 치르고 형들이 요셉을 찾아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우리들만 모아 놓고 유언을 했는데 형들이 악을 행하였다고 할지라도 형들을 용서해주라고 것이다.
 
형들의 이야기를 들은 요셉이 운다. 우는 요셉을 보고 제 발이 저린 형들은 겁이나 요셉의 종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형들이 요셉에게 저지른 죄악은 실로 크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복수를 당할까 봐 염려한다. 죄를 지은 사람의 모습이고 이미 요셉이 용서해 주었는데도 과거에 집착하고 있기에 삶은 늘 불안하고 두려움과 염려가 가득하다.
 
요셉은 두려움에 있는 형들을 위로한다. 아버지가 안 계시더라도 형제들을 돌보고 그 자녀들까지 책임지겠다고 선언한다. 어떻게 요셉은 이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택하신 자들을 결코 버려두지 않고 생명을 주시고 늘 동행하여 주신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고 미디안상인에게 팔리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나탄나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는 인간관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준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관계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태도이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정확히 안다
 
찾아 온 형들에게 요셉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대답한다. 애굽의 총리라는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는 죽게 되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인간은 인간이다. 결코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일들을 멈추어야 한다.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행동은 없는가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게 하시고 용서와 겸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광환 목사
동현교회

목-하나님이 세우시는 가정
본문 : 시 128:1~6
찬송 : 559장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은 둘 밖에 없다. 하나는 가정이고 또 하나는 교회이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축복하시는 가정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축복된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
 
첫째, 사랑의 관계가 있는 가정이다. 본문을 보면 가정의 구성원들이 축복 가운데 거하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진다. 이것은 마치 가족들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생명으로 충일한 나무들이 되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아름답게 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가리켜서 성경은 생명으로 충만한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생명으로 충만한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려면 중요한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남편의 사랑이다. 아내는 돈만으로, 남편의 사회적 지위만으로 행복할 수가 없다.
 
식탁에 둘러앉은 자녀들은 어린 감람나무와 같다고 했다. 감람나무의 특성은 끈질긴 생명력, 바로 위대한 가능성이다. 감람나무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풍성한 생명을 가진 위대한 가능성이 있는 재목으로 자라나려면 부모가 어떻게 사랑으로 자녀를 기르냐에 달려 있다. 부모의 사랑 안에서 자녀들의 삶은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둘째, 희망의 미래가 있는 가정이다. 자녀는 가정의 미래요, 최대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이 지닌 최대의 보물은 바로 자녀들이다. 진정한 축복은 아름다운 자녀들이 그 가정의 삶을 계승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주어진 책임가운데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는 책임보다 더 엄숙하고 중요한 책임은 없다.
 
유태인을 만나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어떤 구절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쉐마 본문(신 6:4~5)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들을 것을 요청하는, 그 백성들의 관심을 요구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 여기에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가장 존귀한 삶인 것을 알았다면 그 동일한 사랑을 자녀에게 가르치라고 말한다. 건강한 자녀가 자라나고 있는 곳, 거기에 하나님이 세우시는 복된 가정의 모습이 있다.
 
셋째, 수고의 결과가 있는 가정이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경험하는 가장 커다란 인생의 허무가 있다면 내가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여 애를 써보지만 수고한 대가를 거두지 못할 때이다. 수고의 대가를 누리는 비밀은 여호와를 경외할 때, 그리고 내 가정의 행복과 처방을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수고의 결과를 누릴 수 있는 복된 인생, 얼마나 부러워할 만한 삶의 모습인가?
 
가정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오늘 우리는 부족하지만 우리의 가정을 그렇게 쓰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가족들의 손을 붙들고 함께 나아가자.

오늘의 기도
 
주님이 친히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셔서 주님의 뜻대로 우리의 가정을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주연 목사
세계로교회

금-씨름 해야 할 때
본문 : 창 32:22~32
찬송 : 400장

야곱하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사람으로 기억한다.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이겼는가? 끝까지 놓지 않아서 이긴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원래 늘 달려들기만 하는 씨름꾼은 아니었다. 샅바를 놓을 때가 언제인지 잘 알았다. 형 에서에게서 도망갈 때를 알았고, 외삼촌 라반에게서도 도망갈 때를 잘 알았다. 세상의 삶에 영악하리만큼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놓을 때와 잡을 때를 잘 아는 야곱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과 지혜로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 다가왔다. 자신이 속였던 형 에서를 다시 만나야 되는 상황이다.
 
야곱은 확신이 없었다. 지금 자신이 받은 모든 복이 정말로 나의 것이 되었는가? 이런 복이 내가 정말로 용서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인가?세상의 성공이, 인생의 형통이, 지금의 잔잔함이 우리에게 영적인 확신을 자동적으로 주지 않았다. 내 삶의 경험과 갈고 닦은 지혜가 영적인 평안을 보장하지 않았다. 왜 잠재된 죄의식은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가도 아물지 않으며, 심지어 복음을 듣고, 약속의 말씀을 받아도 평안과 감사는 늘 충만에 이르지 못하며 바람이 빠지듯 힘을 잃는 것일까?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야곱은 안전의 확신, 용서의 확신, 구원의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되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야 했다. 우리도 언젠가는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그런데 그 요단강 앞에서 확신이 없어서,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건너기가 망설여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야곱은 강을 건널 수 없었다.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홀로 남겨진 사람이 할 것이 무엇인가? 확신이 없어서 불안한 그의 영혼을 부여잡고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할 때였던 것이다. 세상의 욕심을 위한 싸움들, 축복을 차지하기 위해, 아내를 얻기 위해, 재산을 불리기 위해 싸웠던 육신의 싸움들은 수없이 이겼다. 그래도 얻을 수 없었던 평안, 홀로 남겨질 때 이제야 그 영혼의 평안을 위한 싸움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따라서 야곱이 씨름한 상대는 실은 하나님이 아니었다. 첫째, 야곱이 씨름한 것은 자신의 죄의식이었다. 둘째, 야곱이 씨름한 것은 자신의 연약함이었다.
 
지금 홀로 남겨져 있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솔직한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제대로 바라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희미한 믿음의 땅이 단단한 땅이었는지, 흔들리지 않는 집이었는지 확인할 축복의 시간이 된 것이다. 이제 씨름을 할 때이다.
 
오늘의 기도
 
죄와 연약함을 내어놓고 이제는 내가 아닌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만 살려는 씨름을 시작하게 하소서. 모든 것에 막혀 홀로 있더라도, 바로 그 자리에 주님이 계심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주성 목사
광주서석교회

토-왜 사랑의 말이 있어야 하나?
본문 : 엡 6:1~4
찬송 : 568장

 
가정은 따뜻한 사랑을 느끼는 장소이다. 유년기 발달에 있어서 모든 아이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패턴을 발전시킨다. 어떤 아이들은 건강한 자존감을 발전시킨다. 반면 어떤 아이들은 낮은 자존감 속에 살아간다. 불안정한 감정이 아이를 지배한다.
 
어떤 아이들은 사랑받고 칭찬받으면서 성장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칭찬받지 못하면서 성장한다. 이런 아이들은 성격 형성이 원만하지 않다.
 
사랑을 받으면 사람은 살맛이 난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의 특징이 사랑이기를 원하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이 있으면 어떤 힘든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사랑 없이 하는 인간의 모든 일은 종국에 유익이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인간의 삶에는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결론짓는다.
 
인간의 내면에는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감정의 그릇이 있다. 그 그릇이 사랑으로 채워져야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그 곳에서 예수님의 복음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시되 죽도록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가정을 사랑하신다. 그렇기에 가정은 사랑의 말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가정의 자녀는 행복하다. 왜 그럴까? 내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안에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말을 한다. 솔로몬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했다. 칭찬하는 말, 감사의 표현은 사랑을 잘 전달하는 힘이 있다. 격려하는 말은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비난하는 말은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가정을 사랑하신다. 자기 목숨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과거에 실수한 잘못한 것을 끄집어내지 않으신다. 탕자와 같은 우리들을 사랑하신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살 뿐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있고 사랑의 말을 하는 가정이 되기에 힘쓰자.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자. 주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 되도록 하고 말로 상처를 주는 행위는 하지 말자.
 
오늘의 기도
 
가정에서 사랑하는 말, 격려하는 말, 용서하는 말을 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은석 목사
신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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