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 연금의 교훈

비스마르크 연금의 교훈

[ 경제이야기 ]

박병관 대표
2015년 05월 12일(화) 12:46

박병관 대표
독일국제경영원ㆍ가나안교회


온 나라가 공적연금 개혁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럽다. 지금은 모두가 당연시 생각하는 공적연금이지만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을 돌아보면 그 정치, 사회적 논리를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국민연금은 1889년 독일에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해 도입됐다. 당시 육체노동자와 화이트칼라 저임금 노동자 전원이 가입 대상이었는데, 세대 간 부과식 재정충당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도입과 동시에 근로세대가 낸 보험료를 곧바로 노령세대가 수령할 수 있었으니 그 사회적 효과가 가히 파격적이었다. 비스마르크 연금의 체계는 이후 대다수 선진국에서 공적연금의 형태로 도입됐으며 오늘날도 당시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에 국민연금이 도입된 배경이다. 비스마르크는 잘 알려진 보수주의자로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사회주의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여기던 그가 노동자의 사회적 보호막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보험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것은 역사에서 매우 아이러니한 사건이었다.

비스마르크가 총리로 임명된 당시 독일 사회는 그야말로 격랑의 시대였다. 산업화와 함께 급부상한 시민 세력이 정치 참여를 요구하며 의회를 장악했다. 칼 막스의 자본론 출간 이후 사회주의 세력이 체계화됐으며 외부에서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팽창 일로에 있던 열강들이 뒤늦게 통일을 이룬 독일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비스마르크의 문제는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총리직은 국민이나 의회 대표로부터 선출된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지 황제에 의해 해임될 수 있었다. 당시 통일 독일의 초대 황제였던 빌헬름 1세는 과대망상이라고 할 만큼 비현실적인 야망을 품고 있어서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비스마르크와 첨예한 갈등을 빚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스마르크에게 국민노령연금을 포함한 3대 사회보험의 도입은 노동운동의 급진화를 막고 사회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묘수 중의 묘수였다. 이처럼 세계 최초의 공적연금은 철저하게 정치논리에 의해 도입됐다.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이 아닌 반대 세력에게 급부를 제공함으로써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는 정치적 세력논리가 결정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의 공적연금에 대한 논의를 보면 연금의 기능과 재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정치적 이해 관계에 의해 타협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공적연금의 도입이나 개혁에 우리는 매우 신중해야만 한다. 한번 도입된 공적연금은 철회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조그마한 변경도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공적연금은 뜨거운 감자다. 공적 연금의 형태를 조금이라도 개혁하려는 세력은 정치생명을 걸어야 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고령화가 진행 중이어서 연금 재정이 악화되고 이로 인해 경제의 활력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아마 비스마르크가 살았던 초기산업화 시대에는 연금 납입자인 근로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적연금과 같은 사회 구조적인 이슈에 대해 기독교인들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수혜를 입는 정책을 비판하는 일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기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재정이 확보되지 못한 공적연금제도는 미래에 막대한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사회적 의견 형성 과정에도 기여해야 한다. 현재의 정치적 이해 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미래 세대에 막대한 채무를 남기고, 또 갚을 수도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부도덕한 일이기 때문이다. 공적연금 자체를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안전판으로서 공적 연금의 기능은 인정하지만, 재정이 장기적으로 확보될 수 있는 견실한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래 세대가 지속해서 살아나갈 수 있는 세상을 남겨주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적 책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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