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이나 논쟁으로 교정될 수 없는 망상

설득이나 논쟁으로 교정될 수 없는 망상

[ 주혜주 교수의 마음극장 ] 마음극장

주혜주 교수
2015년 04월 29일(수) 15:13

정신질환을 진단할 때 '현실에 대한 왜곡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망상은 현실 왜곡이 극심할 때 생기는 증상으로, 정신과 환자들에게 가장 흔한 증상 중 하나다.
 
망상은 사고(thought)내용에 장애가 생긴 것이다. 즉 근거가 없는 주관적인 신념이거나 사실과 다른 불합리하고 잘못된 믿음이다. 망상은 정신역동적으로는 무의식에 있는 공격적인 충동이나 충족되지 않은 자신의 생각, 감정 및 욕구가 사고의 형태로 외부 또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어 생긴다. 망상은 내용의 특성에 따라 피해망상, 과대망상, 관계망상, 신체망상, 애정망상 등 다양하게 분류된다.
 
한편 망상의 내용은 대상자의 개인적인 상황이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1980년대 환자들이 갖는 피해망상에는 중앙정보부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내용이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망상은 사람들이 수시로 경험하는 비현실적인 사고인 착각, 상상, 환상 등과는 구별된다. 착각이란 실제와 다르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많은 경우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애매모호하거나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을 때 착각할 뿐, 명백한 증거가 있으면 착각하지 않는다. 환상 또한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의 일종으로, 많은 사람이 종교적 환상을 비롯한 다양한 환상을 경험하며, 한편으로는 환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즐겨 듣는 음악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는 '내 환상 속으로'라는 뜻이다. 이토록 환상 속으로 들어가기를 즐기는 이유는 환상이나 백일몽 안에서는 사고가 현실적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많은 문명의 이기들은 과거 누군가가 주위의 극심한 반대와 조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기발한 상상과 공상을 해준 결과물들이다.
 
문학이나 영화 등 예술의 기능 중 하나가 현실에서 가능해보이지 않는 생각들을 통해 일반인의 소망을 채워주는 데 있다. 시인 도종환은 "문학에서 실제 상황을 현실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보는 소망적 사고에 의해 시와 같은 창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자기 계발 분야에서는 사실이나 합리성이 아닌, 바라는 대로 해석하거나 믿음을 형성하는 소망적 사고가 큰 목표에 도달하는 중요한 동력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우리는 비현실적 사고를 통해 위로 받고 많은 것들을 성취하며 살아가지만, 비현실적 사고가 지나치면 현실을 왜곡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이 된다.
 
망상은 논리나 설득을 통해 수정되지 않는 것이다. 망상을 가진 환자의 비현실적인 생각이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열심히 설득하거나 혹은 열띤 논쟁으로 환자의 생각을 바꿔 보려 애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만약 망상이 설득이나 논쟁으로 교정될 수 있다면 정신 관련 분야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실업자가 넘쳐날 것이다! 
 
주혜주교수/경인여자대학교 정신간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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