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4월 27일~5월2일

[가정예배] 4월 27일~5월2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4월 23일(목) 10:11

월-결혼 문제에서 감동하신 하나님
본문 : 창 24:1~9
찬송 : 315장

부모는 자식의 결혼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아내, 즉 며느리를 얻어야 할 때였다. 그런데 이삭은 어떤 아들인가? 100세에 얻은 아들이다. 아무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할 상황이 아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과연 어떻게 자식을 결혼시켰을까?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동네에도 좋은 며느리감이 있었다. 사돈을 맺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브라함은 부자이고 인정받았다. 사라가 죽었을 때 무료로 매장지를 내어 주려고한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종을 불러서 고향 땅으로 가서 며느리감을 구해오라고 했다. 그 이유는 신앙의 가문을 세우겠다는 결심 때문이다. 새로운 민족을 열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이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같이 보낸 것이 아니라 종만 보냈다. 다른 일을 종에게 맡길 수 있어도 이 문제만큼은 아브라함이 직접 해야 한다. 아브라함 자신이 할 수 없으면 이삭이 하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종에게 전권을 맡겼다.
 
이런 결정을 한 아브라함에 대해서 동네 사람들, 지인들은 뭐라고 했을까? 바보같다. 어리석다, 미련하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종에게 전권을 맡겼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최고의 신부감을 준비해 놓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이 당장 닥칠 현실적인 문제를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주인님! 아무도 따라오지 않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지요? 이삭을 데리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딸 가진 부모입장에서 보면 주인도 아니요, 아들도 아니요, 종이 와서 "우리 주인이 당신의 딸을 며느릿감으로 데려가고 싶소"라고 했을 때 선뜻 딸을 보내 줄 사람이 있겠는가? 이런 종의 말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흔들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아브라함이 종의 말에 어떻게 답했는가?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고 하셨으니 사자를 보내서 준비하셨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때 누가 제일 감동했을까? 하나님께서 감동하셨다. 이런 아브라함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최고의 신부를 만나게 하셨고, 리브가의 부모 또한 흔쾌히 허락하게 하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순종하는 사람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리브가는 최고의 신부감이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준비하시면 최고의 것을 주신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결단하고 나아가는 것에 감동하신다. 이런 사람에게 최고의 것을 주신다.
 
오늘의 기도
 
인생에 가장 중요한 문제 앞에서 믿음으로 도전한 아브라함처럼 오늘 하루 결정해야 할 문제 앞에서 믿음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영적인 담력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재전 목사
청강교회

화-하나님은 의인과 함께 일하신다
본문 : 삼상 26:6~12
찬송 : 308장

사울왕은 다윗이 십광야 하길라 길에 있다는 정보를 받고 3천명 군사를 데리고 그 곳으로 갔다. 하길라에 도착한 사울왕은 진을 치고, 그 진을 중심으로 군사들이 진을 둘러쳤다. 밤이 되어 다윗은 아비새를 대동하고 사울의 진으로 갔는데 그의 머리맡에 물병과 그의 창이 꽃혀 있었고, 장군 아브넬과 백성들이 사울왕을 둘러 누워있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주군에게 원수를 죽일 기회를 주셨으니 명하시면 저 창으로 단번에 죽이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를 치면 그가 원수라 할지라도 죄를 짓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도록 맡기고 물병과 창만 가지고 진을 떠나자 하였다. 아무도 다윗과 아비새가 오고가는 것을 보거나 눈치채지 못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이다.(12절)
 
하나님께서는 일을 하실 때 의인을 위해 그 일을 추진하신다. 눈을 감기게도 하시고(사 29:10), 마음을 어둡게도 하시고(사 29:14) 광기를 내게도 하시고(롬 1:28), 완고하게도 하신다.(출 14:17)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시고(출4:21) 완강하게 하시어(출10:1)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고 하셨는데, 이 표현은 바로가 하나님에 의해 완고해진 것이 아니라 본래 강팍하고 완고한 그의 마음을 드러내도록 버려두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려고 의인을 강팍하고, 완악하게 하지는 않으신다. 의인은 의로운 도구로 쓰신다.
 
주님은 "너희는 마음을 강팍케 말라(히 3:8)"고 하셨다. 이같은 옛 성품이 마음에 있지 않게 해야 한다. 말씀에 복종시켜 주님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사탄은 믿지 않는 자의 마음을 혼미케 한다.(고후4:4)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절할 때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된다.(겔 14:9) 악한 자는 저희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다.(롬 1:28) 사울의 악함의 원인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이고 회개하지 않음이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사울을 마음대로 내버려두심으로 악령이 그를 지배한 것이다.(삼상 16:14)
 
만사는 하나님에 의해 추진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과 보호, 축복을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에게 행하시나 악인에게는 악함이 드러나도록 행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길은 보호하시고, 악인의 길은 망하게 하신다. 이 믿음을 굳게 잡고 순종하고 인내하며 의인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의인의 길은 인내를 요하지만 믿음으로 이겨내어 끝까지 의인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르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민기태 목사
동문교회

수-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본문 : 딤전 1:15
찬송 : 305장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고백했다. 이런 마음으로 회개하였고, 이 고백이 그를 겸손하게 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복을 받은 주인공'임과 동시에 '죄를 지은 당사자'로 여겨야 한다. 내가 바로 그 사람과 같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내가 바로 '아담과 하와'이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들은 불순종했다. 그 아담과 하와가 바로 나이다. 어떤 이는 선악과를 '주일 성수와 십일조'라고 했다. 에덴동산의 얘기가 오늘의 이야기요, 그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고 회개하고 겸손해야 한다. 
 
내가 바로 '가인'이다. 가인은 형제를 미워해 죽인 사람이다.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지 않는가? 시기와 질투와 미움, 성경은 이를 살인이라고 한다. 회개하고 화해해야 한다.
 
내가 바로 '에서'이다. 팥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판 사람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16절을 보면 이런 에서를 '망령된 자'라고 했다. 우리도 망령된 행동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내가 바로 '고라'이다. 고라는 당을 지어 주의 종 모세를 대적하므로 주의 백성들의 진행을 방해한 사람이다. 그는 교만했고 영적 권위를 무시하고 위계 질서를 파괴했다. 겸손히 교회를 섬기고 내 위치를 지키면서 내가 할 일만 잘 감당해야 한다.
 
내가 '발람'일 수도 있다. 그는 돈에 눈이 어두웠던 사람이다. 우리도 그를 닮지 않았는가? 현재 우리의 소유에 만족하며 늘 주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자.
 
내가 바로 '삼손'이다. 그는 힘센 일꾼이었으나 이성의 유혹에 넘어가 무기력해지고 수치를 당한 사람이다. 우리는 삼손처럼 선택된 사람인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켜야 한다.
 
내가 곧 '요나'다. 니느웨 성으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불순종한 요나. 금년 한 해는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여 영혼구원의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 내가 곧 '고멜'이다. 그녀는 호세아의 아내로서 간음을 한 음탕한 여인이다. 우상숭배는 영적 간음인데, 우리는 때때로 주님보다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내가 곧 '도마'이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던 제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없이 믿고 확신해야 한다. 내가 바로 '가룟 유다'이다. 언제라도 그 무엇때문에 주님을 배반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회개와 겸손한 신앙은 우리의 사명을 다하게 할 것이며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늘 회개하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주님을 섬기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문재용 목사
선목교회

목-너와 네 온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본문 : 창 7:1~12
찬송 : 220장

노아와 아담은 동격이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때 아담만 있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때 노아만 있었다. 그런데 아담과 노아는 차이가 있다. 아담은 깨끗한 세상에 혼자였다. 그러나 노아는 악인들의 시체가 즐비한 세상에 혼자였다. 노아만이 죄많은 세상에서 혼자 구원을 받았다.
 
미드라쉬 기록을 보니까 당시 사람들은 이런 법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진실은 말하지 말아라. 둘째, 만일 종노릇하거든 주인의 물건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훔쳐라. 셋째, 될 수 있는 대로 방탕을 즐겨라. 인생의 낙이 그것이다. 넷째, 주인을 미워할 기회가 생기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 미워하라. 다섯째, 서로 사랑하라. 죄를 짓기 위하여 동료끼리 뭉치라. 그래서 누우면 음란하였고 앉으면 술을 마시고 서면 춤을 추는 등 온갖 경우에 죄를 범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120년 간의 회개의 기간을 연장하시고 홍수 심판을 예고하시고 방주를 건조하게 하시고 이 방주를 짓는 동안에도 노아는 그들 사이를 다니면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홍수가 올 것이니 죄에서 돌아오라!" 그러나 믿는 이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해가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진다. 이렇게 이상한 징조를 보여 주신 것은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해 보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노아와 그의 온가족은 방주로 들어갔다. 햇빛이 쨍쨍한 날에 방주로 들어가는 노아의 식구를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은 멸망이요 심판이었고, 방주 안에 있는 모든 동물들과 노아의 식구는 살아서 온전한 보호와 보존을 입었다. 하나님이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심은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이 방주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이라고 지명하여 주셨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모든 동물들을 방주에 들여놓고 온 가족이 방주로 들어갔다는 것은 순종함으로 믿음의 역사를 보인 것이다.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고 하셨는데 노아도 행함으로 순종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나타내어 방주로 들어갔다.
 
지금은 종말의 때이다. 노아의 때보다 더 악한 시대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와 네 온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생명도 보존 받고, 풍성한 삶도 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받으면서 기뻐하며 참 평안을 얻는 성도가 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악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늘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춘화 목사
풍성한교회

금-예수님과 행복한 동행
본문 : 갈 2:20
찬송 : 436장

우리에게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있어야 하지만 돈과 세상 줄도 있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맡기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능력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만을 구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갈망합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 주님으로 믿고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가장 놀라운 축복이다. 예수님은 희망이 없는 이 시대에 소망이시다.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참된 길이 되신다. 죽음이 가득한 이 세상의 참된 생명이 되신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놀라운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시다. 예수님은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그런데 왜 우리 인생은 자주 공허한가? 왜 우리 마음은 슬픔과 낙심과 외로움과 우울함으로 차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자아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이다. 우리의 자아의 실체는 죄 그 자체이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원래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 자아 자체가 죄 덩어리요, 죄 짓는 공장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까맣게 타락했다. 죄의 종노릇하면서 내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죄악의 구덩이 속에 갇혀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자아이며, 옛사람의 모습이다.


이런 우리를 누가 살려주셨는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옛 자아는 죽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우리 옛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을 때에 이미 죽었다. 자아가 죽었다는 것은 믿음이 장성한 후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이미 죽었다. 자아가 죽는 것이 기독교에서는 신앙의 시작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인 동시에 내가 죽은 십자가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장례식을 치르고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나도 부활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다.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며 사는 것이다. 이렇게 선포하자! "나는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나는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생명이시고 나의 전부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날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화섭 목사
칠성교회

토-능력의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 : 딤후 1:7
찬송 : 406장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아기는 낯선 사람을 보면 울음을 터뜨린다.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이 되면 학업 때문에, 청년이 되면 취직, 결혼 문제 등으로, 성인은 직장, 사업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요즘은 특별히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노후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그런데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왜 이런 두려움이 생기는 것일까?
 
마귀가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했다. 두려움은 마귀가 준다. 베드로조차 마귀가 준 두려운 마음에 사로잡히자 어린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다.
 
담대했던 엘리야 선지자도 마귀가 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자, 한 여인의 죽이겠다는 말에 도망자가 된다. 그리고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죽음을 간청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절망, 낙담, 실패, 열등감,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비겁해진다. 두려움은 마치 흔들 의자와 같다. 흔들 의자는 아무리 흔들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두려움은 우리의 감정과 의지와 생각을 흔들어 놓기만 할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365회나 "두려워 하지 말라"고 강조하신다. 두려움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두려움은 사자를 강아지처럼 만든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자녀를 마귀의 자녀처럼 살게 한다. 마귀는 우리에게 환경, 사람, 약점, 부정적인 모습에 집착하게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능력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능력의 마음이다. '할 수 있다, 된다'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신체적, 지적, 정서적, 영적 영역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 능력, 가능성을 주셨다.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의 마음을 주셨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의 마음으로 믿음의 말, 긍정의 말을 하며 주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에 붙잡혀 믿음의 말, 축복의 말, 긍정의 말을 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원범 목사
복음의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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