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위기와 북한의 생존전략

식량 위기와 북한의 생존전략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4월 21일(화) 15:38

김명배
前 주 브라질 대사ㆍ예수소망교회


동족인 북한주민이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신음하고 있다. 피를 나눈 동족과의 고통분담을 위한 대북지원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북지원이 수령과 특권 계층의 축재와 독재의 연장, 군사력 증강과 핵무기 개발에 전용되어 국가안보의 위해요소로 되돌아 오는 것을 용인할 국민도 없을 것이다. 딜레마 상황이라고 할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나라는 많지 않으며, 대부분 국가들이 부족한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년간 500만 톤 자급자족에 100만 톤이 부족한 북한의 식량사정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90년대 중반 수 백만 인민이 굶어죽는 식량위기 시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70만 톤의 식량을 지원받았으므로 대량아사가 불가피했던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30여만 톤의 부족분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투입되는 예산 중 일부만 줄였더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당국은 김일성 유해안치를 위한 '만수산 기념궁전'을 짓는데 9억 달러를 투입하면서 2~3백만 인민을 대량아사로 몰고 갔다. 

해마다 국제사회로부터 대량의 식량을 지원받으면서도 120만 정규군을 유지하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김일성 출생 100주년 기념행사 등에 많은 예산을 쏟아 부었다. 결국 북한의 식량위기는 국가예산을 체제선전비, 수령위신 제고사업, 군사비, 특히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에 우선적으로 투입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북한당국은 식량위기를 구실로 원조를 탈취해서 여유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군사력 증강과 핵무기 개발에 전용해서 우리에게 안보위협으로 되돌아 오는 구조를 체제유지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혈세인 대북지원이 고통 받는 인민에게 쓰여지기보다는 독재 연장과 안보위협으로 되돌아 오면서 결국 북한당국을 돕는 역기능을 수행하는 구도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한ㆍ미 이간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 여론을 조성하고 적화통일을 앞당긴다는 통일전선전략도 활용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1993년부터 식량배급을 폐지하고 전체 인구 10분의 1에 해당하는 지배계층과 평양 시민에게만 배급을 실시하고 있다. 소위 '불만계층'을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된 지방에 격리시켜 철저한 감시통제 아래 하루하루 연명과 기아선상에 묶어 둠으로써 민란소지를 원천봉쇄하고, 나아가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를 탈취하는 수단으로, 또한 지배계층에게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충성을 확보하고, 인민의 복종을 강요하는 통치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배급제 폐지 이후 인민의 자급자족 수단으로서 마지 못해 시장을 허용하면서도 시장 유통구조의 핵심은 특권지배계층 및 이들과 선이 닿아 있는 신흥시장세력에 장악하게 해, 결국 무력한 인민은 시장구조의 밑바닥에서 겨우겨우 연명하게 되는 것이 북한 시장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이른바 '북한판 정경유착'인 셈이다. 시장을 통해 자본주의 사조가 파고들면서 개혁과 개방의 바람이 북한사회에 휘몰아칠 것이라는 당초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이처럼 식량 위기와 시장조차도 체제강화의 수단으로 역이용하는 수령독재체제의 속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체제유지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북한에서 시장을 통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주체사상의 철벽성을 간과한 데서 오는 중대한 오류라 할 것이다. 

오히려 극심한 경제위기로 인해 배급제가 폐지되고, 대량 아사 사태가 횡행하던 90년 대 초 이후에 태어나 국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 채 '고난의 행군'만을 강요당해온 이른바 '장마당 세대'가 세대교체에 의해 북한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하게 될 2020년 경에 '개혁, 개방 쓰나미'가 북한 전역을 강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북정책을 수행하는 것이 보다 현실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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