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단의 한아협 활동

본교단의 한아협 활동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5년 04월 14일(화) 14:12

KNH 한국협의회가 발족되기 전 KNH 후원 사업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농촌부에서 담당했다. KNH 후원으로 운영되는 어린이집 사업은 남양만 간척지, 즉 농촌 지역사회 선교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촌부 곽재기 총무는 1978년 국제워크캠프 명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1978년부터 도시 빈민지역인 성남시 은행동에 있는 성남제일실업학교에도 KNH 후원이 시작됐다. 이에 따라 1981년 사회부도 이 사업에 관여했다. 결국 1981년 12월 21일 총회 임원회는 이 사업은 농촌부에서 사회부로 이관했다. 사회부에는 예장 KNH 사업을 위해서 복지분과 위원장과 정봉덕 사회부 총무, 박종삼 박사(숭전대 교수), 사회부 간사, 황화자 전도사(노원 어린이집 원장)를 위원으로 하는 소위원회가 구성됐다. 이때부터 예장 통합 산하 KNH 후원 사업은 사회부에서 주관하게 됐다.

1982년 7월에는 농촌부, 사회부, 자선사업재단, 그리고 한아협 공동주관으로 전북대 사회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 베커(R. Wecker) 등 교수 2명 초청 세미나가 두 번 개최됐다. 사회부 관계자들은 1983년 10월과 1984년 1월 2차에 걸쳐 KNH 관련 유아원을 방문했다. 1984년에는 세미나 개최를 주관하지 않고 교단 산하 유아원 교사 연수회 후원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이와 함께 KNH후원 시설인 남양만 지역 6개 어린이집 유아원 졸업생 120명과 교사 20명을 초청하여 서울을 견학시켰다. 이때 새문안교회와 소망교회의 후원이 있었다. 

또한 예장 사회부에서는 한아협과 교단 산하 어린이집 및 청소년 시설들의 관계와 후원 상황을 늘 관찰하고 총회에 보고했다. 대구 달구벌 교회 유아원 35명과 안양한무리교회 민들레탁아소 35명이 KNH후원을 받기로 했다는 것과 강원노회 황지교회 늘봄의 집 탁아소 59명, 대전노회 빈들교회 섬나선교원 40명이 KNH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1986년과 1987년 총회 회의록에 보고됐다. 더불어 1987년 KNH 후원을 받는 교단 산하 17개 유아원과 청소년 복지시설에 KNH 후원금 2억 868만 5185원이 지원됐다고 보고됐다. 1989년 총회 보고서에도 1억 389만 5525원의 KNH 정기 양육비 지원이 보고됐다. 뿐만 아니라 1977년부터 KNH 지원을 받던 우도어린이집이 정부 지원을 받게 됨에 따라 1989년 4월부터 후원이 중단된다는 변화상황도 보고됐다, 

한아협과 예장 사회부의 관계는 지원금 전달과 관리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1986년부터 실시된 사회부 사업 '사랑의 현장 갖기 운동'으로 두 기관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졌다. 이 운동에 한아협의 황화자 총무가 참여하고, 한아협은 '사랑의 현장' 중 하나로 수용됐다. 그래서 1988년 한아협 총회에서는 KNH 후원과 관련된 시설운영위원과 자원 활용 교육을 예장 사회부와 협의하여 진행하도록 결의하기도 했다. 이렇게 계획된 한아협 교사 세미나 소식, 즉 그 주제와 장소, 일정, 참가자 등은 '교회와 사회' 1988년 8월호을 통해 상세하게 산하교회에 전달됐다. 

또한 1990년부터 탁아사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종교기관들의 탁아사업 참여를 적극 권장하는 상황에서 예장 총회 사회부에서도 전국 교회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교육의 장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1990년 제14회 한아협 교사세미나를 주최하기도 했다. 한아협과 예장의 관계는 KNH 후원 종결이 준비될 때 그 뒤를 이을 새로운 단체 '작은자복지선교회'가 발족될 때 더욱 공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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