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의 그늘

햇볕정책의 그늘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4월 14일(화) 13:55

김명배
前 주 브라질 대사ㆍ예수소망교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북한정세를 분석할 때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이 수령독재체제의 철벽성이다. 

북한 당국이 주체사상을 폐기하지 않는 한 철벽성은 남북관계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불변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원칙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북한 정세를 분석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거듭 말하고 싶다. 

햇볕정책이 전형적인 케이스인데, 교류, 협력을 통해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하려는 햇볕정책은 통일전선전략이라는 철벽에 부딪혀 개혁, 개방의 목적은 사라지고 교류, 협력의 수단만 남는 본말전도의 상황에서 아무런 변화도 없는 북한 사회에 대규모 경제지원만 쏟아 부었다. 북한을 도와줄수록 전쟁 방지, 평화 공존, 민족 동질성 회복, 북한 주민과의 고통분담, 통일 기반 조성 등 햇볕정책의 목적은 사라지고, 북한 군사력 증강, 핵 무기 개발, 민족 이질성 심화, 인민 고통 가중, 적화통일 기반조성 등 통일전선전략을 도와주는 역기능을 수행하면서 안보위협으로 되돌아 오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수령독재체제의 철벽성으로 인해 북한 사회의 변화는 없고, 자유분방한 남한 사회만 변화하면서, 공산주의 특유의 정치공작과 선전이 남한사회에 침투하면서 국가 안보체제와 국민 안보의식이 약화되고, 한국 사회에 친북 세력이 늘어났다. 한국이 북한을 도와줄수록 지배계층의 기득권이 강화되고, 인민의 기아상태와 차별화를 통치수단으로 이용하는 수령독재체제를 도와주는 역기능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비 흡수, 비 용인, 교류ㆍ협력 증진'으로 요약되는 햇볕정책 3원칙은 통일전선전략의 철벽에 부딪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개념으로 전락했다. 

필자는 아직은 먼 장미 빛 환상인 흡수통일을 논하기 전에 당장 발등에 떨어진 적화통일을 저지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청와대, 아웅산, KAL기, 천안함, 연평 해전 등 숱한 도발에 제대로 된 대응 한번 해본 일이 없는 남한이 과연 '비 용인'의 원칙을 지킬 수 있을 지. 햇볕정책 3원칙은 결국 통일전선전략을 도와주는 종속적 개념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서독의 경우 '동독이 원조를 요구하지 않는 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한, 투명성을 보장하지 않는 한, 대 동독 경제지원을 하지 않겠다'라는 '동독 지원 3원칙(Freikauf 정책)'을 견지하면서 통일을 실현한 사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6.15공동선언(2000년)과 10.4선언(2007년) 등 남북 정상회담에서 최대 관심사안인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는 제기된 일이 없고, 주한미군 철수를 뜻하는 '자주'와 원조를 뜻하는 '경제협력'만 합의됐을 뿐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햇볕정책이 북한을 통일과 민족 공조의 파트너로, 미국을 통일과 민족공조의 걸림돌로 인식하고, 북한을 '공동의 적'으로 규정한 한미동맹의 전제를 방치한 채 일방적으로 '주적개념'을 삭제함으로써 동맹의 결속력과 국가안보를 약화시킨 점이다. 

또한 헌법이 국가안위와 국민의 생명,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안에 대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햇볕정책을 추진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과오였다. 

동방정책이 미국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해서 소련의 협조를 이끌어 낸 정책인 반면, 햇볕정책은 북한과의 공조를 강조하면서 미국과의 동맹을 소홀히 했다. 햇볕정책은 남한의 국내 정치와 관련된 정치적 수사(political euphemism)와 북한의 정치선전(political propaganda)이 개입됨으로써 사안의 초점과 본질이 흐려졌다.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 통일이든, 공산주의 통일이든 통일만 되면 된다는 식의 '통일지상주의'가 확산되면서 이념적 선명성이 사라졌다. '느슨한 통일' 운운은 북한이 남조선 적화공작을 은폐하기 위한 정치선전적 용어일 뿐이다. 북한 정권에게 남한은 오로지 적화와 원조탈취의 대상일 뿐 결코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 아니다. 받는 북에게는 대남공작의 여건이 조성되고, 주는 남에게는 안보체제가 무너지는 모순이 반복될 뿐이다. 

햇볕정책의 추진과정에서 북한 공작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면서 남조선 적화공작과 수령독재체제에만 햇볕이 들었을 뿐 남한 국민도, 북한 인민도 온통 그늘에 싸인 것이 현실의 모습이다. 따뜻한 동포애로써 북한 동포를 감싸되 햇볕정책으로 인해 드리운 그늘은 말끔히 걷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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