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 서둘 이유가 없다

남북대화, 서둘 이유가 없다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4월 14일(화) 11:40

김명배
前 주 브라질 대사ㆍ예수소망교회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태를 계기로 경색국면으로 접어들었던 남북관계가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관을 빙자한 북한 실세 3인방의 '깜짝 방한'을 계기로 대화 분위기로 급선회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선 사과 재발방지(5.24조치)'도, 핵 폐기 약속도 무시하고, 적반하장으로 대북전단 살포금지와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을 대화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상투적인 허장성세와 기만전술이다.

국면 전환의 계기가 된 3인방 방한 연출의 진의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원조 탈취, 단순한 체육행사 등으로 축소 해석하지만 적어도 실세 3인방이 개입된 사실에 비추어 설득력이 미약하다. 북한당국이 최우선시하는 정권 안정과 체제 유지, 나아가 '남조선 적화통일'의 혁명목표 실현에 도움이 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나아가 장차 남북관계의 방향을 정하게 될 2017년 대선에 대비해서 대남정치공작을 가동시킬 정지작업을 염두에 둔 고도의 계산된 연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차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과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처럼 경협을 빙자한 원조탈취와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을 구실로 미국을 제외한 채 한국과의 직접협상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취하면서 한미간을 이간시키는 공작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첫째, 남북정상회담을 기필 성사시켜 김정은 3대 후계체제를 안정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이용코자 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4년 차에 들어서고 있지만 장성택 처형 이후 공포정치, 경제난, 핵실험, 인권 문제 등 안정기반이 여전히 취약한 상황에서 한국과 강대국들이 김정은 체제의 안정 여부를 지켜보는 관망적 자세를 취하면서 대북경제제제가 강화되는 악순환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코자 할 것이다. 둘째, 남북간의 화해분위기를 역이용해서 2017년 대선에서 북한의 요구를 상당 수준 반영할 친북성향 정부의 집권을 돕는 대남정치공작에 체제의 운명을 걸고 '올 인'할 것이다. 북한정권이 당면한 2대 현안은 주한미군 철수(남조선 적화통일의 전제)와 경제 위기 해소(원조 탈취)로 요약된다. 

탈 냉전 이후 한반도 및 동북아의 전략적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고, 미중패권경쟁이 가열되면서 주한미군 철수의 실현 가능성이 더욱 줄고 있다. 군사적 긴장조성과 핵 위협도 원조 탈취 수단으로서의 효용이 한계에 달한 지 오래다. 2대 현안을 상당 수준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북한의 요구를 반영할 친북성향 정부의 집권을 돕는 대남정치공작에 '올 인'하는 것이다. 친북성향의 정부가 집권하는 경우 '대북 퍼 주기 식 지원'을 통해 경제위기의 상당부분을 해소하고, '반미 촛불시위'를 통해 미국의 국민여론이 주한미군 철수 쪽으로 모아지도록 북한정권은 대대적인 정치공작을 펼 것이다. 북한당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극렬하게 외치는 것은 대남 정치공작을 은폐하기 위한 '성동격서'의 위장전술이라 할 수 있다. 

3인방의 전격 방한은 남남갈등과 한미 이간을 부추겨 친북성향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고 그간 북한 공작당국이 대선 시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해 온 '반 보수 진보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정지작업의 성격을 띠고 있다. 북한 수령독재가 종신 집권이 보장되는 체제임에 반해 한국은 5년 단임제이므로 남한 정부가 임기 내 가시적 성과 제고에 집착할수록 북한의 협상입지를 강화시켜 줄 뿐이다. 아쉬운 쪽은 북한이다. 정부가 김정은 정권의 안정 여부를 의연하게 지켜보면서 관망하는 여유를 보일수록 남한이 대화의 주도권을 쥐게 되어 있다. 두 번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경험한 바와 같이 철벽통제가 가능한 북한사회는 촌치의 변화도 없는 반면, 자유분방한 남한사회에는 허황한 평화 유포리아(euphoria)가 난무하면서 안보의식이 해이해지는 현상은 지양돼야 할 것이다. 2017년 대선이 남북 관계의 방향을 가르는 일대 분수령이 된다는 사실을 유념하면서 정부가 지향하는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신중히 대처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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