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 선수를 생각하며

최동원 선수를 생각하며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이경욱 목사
2015년 02월 24일(화) 08:41

몇 주 전, 지역구 의원을 지낸 분이 교회에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난 후에 자신이 쓴 책을 한 권 선물로 주고 가셨다. 그 책의 서론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바보 최동원을 기리며'라는 제목 글이다. 2011년 9월 14일 아침 불후의 강속구 투수 최동원 선수가 타계한다. 그를 추억하는 이유는 그가 대 스타이기 때문만은 아닌데, 그는 연봉이 수 억원에 이르는 스타 선수들 그늘 아래 생활고를 겪는 동료 선수들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헌신한 행동하는 양심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동원은 동료와 후배의 권익을 위해 가장 열심히 뛴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1988년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600만원에 불과 했다. 2군선수들은 제대로 식사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야구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기에 음지에 있는 선수들의 복지와 권익향상을 위해 가능한 노력을 하고 싶었다. 다른 선수들보다 내가 그들의 고충을 이야기 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귀를 기울여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노력을 기울이던 스타 선수였기에 그의 타계소식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한국 사회의 중요한 문제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 빈부의 격차가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목회자의 세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교회마다 목회자에게 최선을 다하여 예우하고자 하지만 형편이 미약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는 교회가 많다.

우리는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임지를 찾지 못하고 있는지, 생활고를 겪고 있는지 잘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에 대리 운전을 하면서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가 있는지를 모른다. 목회자들은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의 사례를 받는지도 잘 모른다. 우리는 동료 목회자들이 어느 정도 생활하는지도 잘 모른다.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므로 하나님께 맡기며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어려운 목회자들이라 할지라도 먹이시고 입히신다. 그러나 이런 핑계로 우리 마음 안에 어려운 목회자를 돌보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생각해본다. 가인이 하나님께 "내가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까?"하는 말이 생각난다. 하나님은 아마도 "그렇지! 너는 형제를 지키는 자이지!"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성숙한 사회는 자신의 주변을 돌본다. 미 성숙한 사회는 자신의 주변을 돌보지 않는다. 성숙한 교회는 우리 주변을 돌봐야 한다. 정말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서로를 돌보는 목회적 관심이 필요할 때가 왔다.

이경욱 목사 / 서소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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