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상에서 남북한 선박 충돌 사건

공해상에서 남북한 선박 충돌 사건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2월 10일(화) 15:16

김명배
前 주 브라질 대사ㆍ예수소망교회

 
북한당국은 모든 인민을 수령과 혁명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주체형 공산주의자'로 개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상, 이념, 교양 사업을 전개한다. 수령과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과 그 가족에게 신분상승의 특혜를 부여한다. 사회적 신분을 높이고 물질적 혜택을 주는 대가로 인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나는 1999년 주 스리랑카 대사 재직 시 '신분 상승'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심증이 가는 사건을 경험했다.

1999년 3월 31일 싱가포르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던 현대상선 소속 2만 톤 급 콘테이너 선 '현대듀크'호가 스리랑카 인근 벵갈만 공해 상에서 3천 톤 급 북한 화물선 '만폭호'와 충돌해 만폭호가 침몰하면서 선원 37명이 죽고, 2명이 현대듀크호에 의해 구조된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 후 현대듀크호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스리랑카의 콜롬보항으로 입항하여 선체의 파손 부분을 수리하고, 필자가 현지 대사로서 구조된 북한선원 2명의 신병을 북한 당국에 인도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나는 사태 수습을 위해 우선 현대듀크호의 양 선장을 만나 사건 경위를 듣는 중에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들었다.

양 선장 얘기가 자신의 오랜 선원 생활 경험에 비춰 해상 충돌사고가 발생하면 살고 싶은 인간의 본능 때문에 사람들이 바다로 뛰쳐나오게 되어 있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 북한 선원 39명 중 2명 만 밖으로 뛰쳐나오고 나머지 37명은 선실 안으로 기어들어가 죽음을 자초했다는 얘기였다.

당시 관계 직원의 보고에 의하면 북한이 평양에서 전세기 편으로 선원 39명을 싱가포르로 공수하고 그곳에서 안전장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고철' 수준의 낡은 배를 구입해 첫 출항에서 현대듀크호와 충돌했다는 것이었다. 북측의 고의성을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문득 1996년 1월 내가 본부 아중동 국장 재직시 잠비아에서 근무하던 북한 대사관 직원이 불과 2주 만에 두 번에 걸쳐 한국으로 망명해 온 사건이 뇌리를 스쳤다. 한 공관에서 연거푸 두 번 이나 망명한 사건(유 서기관과 현 서기관 부인이 먼저 망명하고, 보름 후 현 서기관이 망명)인 점에서 국민적 관심이 컸던 사건이었다. 또한 현 서기관의 작은 아버지가 김정일의 최측근인 현철해 대장이고 유 서기관의 부친이 외무성 의전장인 고위층 집안인 점에서 청와대에서도 관심을 가졌던 사건이었다.

사건 종료 얼마 후 이 사건을 현지에서 지휘한 잠비아 주재 김진호 대사가 일시 귀국한 기회에 김 대사 초청으로 현 서기관 부부와 넷이서 테헤란로의 어느 화식집에서 저녁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한 공관에서 2주 만에 두 번이나 망명이 가능했는지 물어보았더니 현 서기관 대답이 이전 같으면 부인이 한국으로 망명하면 평양으로부터 보안관이 급파되어 남편인 자신을 평양으로 압송해서 조사하게 되어 있는데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려워 자신을 평양으로 소환할 항공료가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에 기회를 보아 공관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현 서기관을 평양으로 압송하는 일조차 차일피일 미루던 북한당국이 선원 39명을 전세기로 싱가포르까지 공수하고, 고철 수준의 중고선박을 구입해서 첫 출항에서 현대듀크호와 충돌하여 선원 대부분이 선실 안으로 기어들어가 죽었다는 일련의 상황에 비추어 이 사건이 단순한 우발적 사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심증이 들었다.

당시 스리랑카에는 북한의 상주공관이 없고 뉴델리 북한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었으므로 생존 선원의 신병 인도를 위해 뉴델리로부터 참사관 2명이 콜롬보로 급파됐다. 이 참사관이 직업외교관이고, 다른 참사관은 당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이 참사관이 관저로 수차 전화를 걸어 나와 통화하는 음성에서 무엇에 쫓기는 듯한 절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의 정신에 입각해서 가장 안전하고 신속하게 북한 선원 2명의 신병을 인도할 것이오"라고 밝히자 이 참사관의 안도하는 음성을 감지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정부 출범 1개월 만의 사건이고, '햇볕정책' 표방 이후 첫 사건이므로 본부에 지침을 구하면 '전례'도 없고, 관계부처 협의 등으로 차일피일 시일을 끌게 되면서 국제사회에서 햇볕정책의 공신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므로 현지 대사가 책임을 지고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나 스스로 판단했다.

며칠 후 스리랑카 관계관의 입회 하에 선원 2명의 신병을 북측에 인계하자 이 참사관이 비행기 트랩에 오르기 전에 내가 서 있는 곳까지 걸어와서 90도 가까이 허리를 굽혀 "대사님 은혜를 결코 잊지 안카시요"라고 극진히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측에 무언가 절박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강하게 느꼈다. 그 때 나의 뇌리를 스친 생각이 '주체 형 공산주의자의 신분상승'이라는 주체사상의 용어였다. 아마도 죽은 37명의 가족은 신분상승이 되었을 것이고, 생존자와 가족은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을 것이다.

37명의 선원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이 극히 이례적으로 우리 정부와 현대해상에 대해 이렇다 할 불평 한마디도 제기하지 않은 사실을 보면서 아마도 정상회담 추진과 금강산 사업등과 연계된 금전적 이권이 얽힌 사건일 것이라는 심증이 들었지만 내가 개의할 사안은 아니었다. 북한 당국은 2명의 신변 안전에 신경 쓰기보다는 수 억불의 금전적 이해가 얽힌 정치 공작이 드러나는 것을 극력 경계했을 것이다.

얼마 전 스리랑카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하며 가깝게 지내던 조 사장과 주일예배 후 교회 커피숍에서 우연히 들은 얘기를 첨언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상기 해상 충돌사고 며칠 후 콜롬보 시내 사우나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잘 생긴 노 신사가 "남에서 왔소? 나 북에서 온 장성택이오"라고 자신을 소개하기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물었더니 "해상충돌 사고 때문에 왔시다"라고 서슴없이 얘기하더라는 것이다. 나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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