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서 동반성장으로

성장에서 동반성장으로

[ 기고 ] 기독공보를 읽고

금영균 목사
2015년 01월 29일(목) 15:10

 
국가는 오래전에 동반 성장위원회를 조직하고 운영하고 세계는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체재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경제학자들은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부가 한쪽으로만 치중되고 있어 빈자는 더욱 삶이 피폐하므로 이제는 분배주의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장위주에서 분배주위로 나가는 경향이 시작되는 것이다. 70년대 8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교회도 성장의 혜택을 받아 급속하게 성장하여 대형교회가 출현했다. 성장 속에는 부와 권력이 내재되어 교만과 오만으로 최근 논란되는 갑질의 행포가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비추게 된다. 교회도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거저 얻을 교인도 이제는 없다. 전도로 얻은 교인이 얼마나 될까! 서울의 교인들은 모두가 지방에서 복음을 받은 교인들이 서울에 올라와 채워준 성장이다. 수도권의 인구가 3000만이 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물론 목회자와 교회의 값진 노력도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게 성장된 교회가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나 한번쯤 자성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참 뜻은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약한 자를 돌보며 불의한 것에 입을 열고 아닌 것을 아니라 말하며 모두가함께 어울려서 평화를 누리며 사는것에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도록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동안 우리는 자기 혼자 살기에 바빠서 옆을 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기독공보 1월 3일자 3쪽과 9쪽에 눈에 번쩍 뜨이는 기사가 올라왔다. (작은 교회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고 조화 이루는 사역 함께) 9쪽에는(농촌 교회와 동반목회를 통해 함께 성장합니다)라는 기사다. 오랜만에 듣고 싶었던 말이다. 늦게나마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서로 상생 동반 한다니 얼마나 기쁜 일이지 모르겠다.
 
우리 교단의 교회 중 30명 이하의 교회수가 70%된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신가보다 이제는 성장의 동력인 사람이 없다. 요즘 교회에 유년 주일학교가 없는 곳이 너무 많다. 청년회도 점점 약화되는 형편이다. 그동안 우리가 자기중심주의로 산 결과다.
 
미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취객이 밤중에 가로등 밑에서 무엇을 열심 찾는 모습을 보고 경찰관이 함께 찾아보았다. 그러나 있었다는 것은 발견 하지 못하였다. 화가 난 경찰관은 분명히 찾는 물건이 어디서 있었느냐고 묻자 취객이 대답하길 저 어두운 곳에서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찾느냐고 경찰관이 되묻자 그 대답이 걸작이다. 밝은 데서도 못 찾는데 어떻게 어둔데서 찾을 수 있는가 반문했다. 그렇다. 우리교회가 지금껏 어둡고 추악하고 힘든 곳에 관심과 애정을 갖지 못하고 힘 있고 돈 많은 곳인 밝은 곳에만 온 힘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교회가 잘 나갈 때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교회의 문턱이 높게 여겨질 만큼 부자들 중심으로 교회가 움직여서도 안 된다.
 
교회지도자들이 사회적 약자들 보다 부자와 권력자들에 이익을 위한 발언만 해서도 안 된다. 교회가 선교라는 미명 아래 교회도 권력적 힘을 갖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부자와 권력자들의 편만 들면 그것은 반 그리스도적 수단을 정당화 시키는 일에 불과하다.  교회는 원래 가난한 사람을 위한 존재이다. 예수께서도 가난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 하셨는지 알고 있지 않는가? 우리 목회자들은 목회자주의를 경계해야 바로 설 수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많은 성장과 번영을 했으나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 살고 있어 기업적 능률만을 중시하며 세속적 기준과 생활양식을 우선하려는 유혹들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초대 선교사들의 헌신과 초대 목회자들의 순수한 열정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만이 한국교회와 우리 목회자가 사는 길이다.

금영균목사/성덕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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