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대로, 들은대로,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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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1월 27일(화) 16:22

北 알려면 주체사상 이해해야

 
김명배
전 주 브라질 대사

나는 일생을 직업외교관으로 살면서 대체로 북한을 비롯한 정세 분석을 위주로 하는 부서에 근무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은퇴 후 지난 10여 년 간 대학 강단에서 '국제 정세와 남북한 관계'를 강의했다. 내가 모스크바 정무공사로 있던 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했다.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의 분위기는 김일성 사망이 북한 정권의 조기 붕괴로 이어지면서 통일이 앞당겨지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외무성의 벨리 아주국 국장(후에 주 日 대사 역임)을 만나 김주석 사망 이후 북한 정세를 잘 분석해 줄 수 있는 북한문제 전문가를 소개해 줄 것을 부탁했더니 마침 평양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미나예프 정무참사관이 휴가차 모스크바에 와 있으니 오늘 밤에 만나서 들어보라고 했다.

김일성 대학 조선어학부 출신으로 우리말을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동 참사관을 밤 12시에 시내 호텔에서 만나 북한사정을 물어보니 대답이 뜻밖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김정일이 사실상 북한을 통치해 왔으므로 큰 변화 없이 이 체제가 꽤 오래 갈 것이오"라는 얘기였다. 나는 본부에 들은 대로 보고했고 김 주석 사망이 조기통일로 이어질 것을 기대했던 청와대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서 주 러 대사관 보고를 내심 못마땅해 했다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전해 듣고 한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1개월쯤 지난 후 앞으로 주 러 대사관이 북한 정세에 관해 계속 관심을 갖고 보고하라는 '격려'의 뜻이 담긴 전문지시를 받고서야 비로소 마음 고생을 덜 수 있었다. '돈 가는 데 정보 간다'라는 말이 있지만 소련이 북한에 준 원조액이 150억 불로서 중국이 북한에 준 원조액의 10배에 달한다는 사실도 동 참사관으로부터 들었다. 따라서 외무성, 당, 학계에는 북한 문제 전문가들이 즐비해서 나만 부지런하면 북한 정세를 파악하기에 모스크바만큼 좋은 곳이 없다 할 정도였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나에게 강조한 것은 주체사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수령독재체제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북한 정세에 관한 객관적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특히 아주국 부국장으로 있던 데니소프대사는 평양 근무 통산 14년의 베테랑으로서 외무성 내에서 북한 정세에 가장 정통한 분으로 알려져 있었다. 내가 본부에 국장으로 들어올 때 동 대사는 평양 주재 대사로 갔으니 북한 사정에 더욱 통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동 대사가 나에게 들려 준 얘기는 족집게라 할 정도로 정확했다.

"공산주의는 전략은 불변이고, 전술은 임기응변이오. '남조선 배제정책'이 전략이라면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은 전술에 해당하오. 북한 당국은 남조선 배제 정책에 의해 남한과의 접촉을 철저히 배제한 채 미국과 직접 협상하되 '협상은 미국과, 돈은 한국으로부터'라는 도식을 철저히 지킬 것이오. '남북한 당사자 해결원칙'은 돈 얽어내는 선전용어일 뿐이오. 금강산 관광사업은 북한 인민과의 접촉이 철저히 배제된 채 철책 안에서 돈만 내고 경치만 구경하는 사업일 뿐, 북한의 개방과는 아무 관계도 없소. 이산가족 상봉사업은 1년에 기껏 500~600명 수준으로 동ㆍ서독 간 700~800만 명의 1만분의 1에도 못 미치오. 그것도 동서독처럼 친척 집에 장 기간 체류하는 것도 아니고 북측이 지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잠시 만나는 식이니 이 역시 북한의 개방과는 무관하오." 특히 잊혀지지 않는 얘기는 "북한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촌치의 타협도 없는 수령독재체제의 '철벽성'을 이해해야 하오. 북한은 무너지는 순간까지 '꺾이는 한이 있어도 결코 굽히지 않는 주체적 자존심'으로 버틸 것이오"라는 내용이었다. 모두가 정곡을 찌르는 얘기들이었다. 지금도 동 대사의 우정 어린 도움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은퇴 후 '에벤에셀의 손길' '주체의 봄은 오는가' 등 외교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정세를 분석하는 책을 쓴 바 있다. 북한정세에 대한 소견을 독자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준 기독공보사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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