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위기와 유경호텔에 얽힌 에피소드

식량 위기와 유경호텔에 얽힌 에피소드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1월 27일(화) 16:21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는 '수령 신격화'에서 출발

김명배
전 주 브라질 대사

 
필자는 주 러시아대사관 근무 시절 '모스크바 한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같이 한 이민복 교우와 가깝게 지냈다. 이 분은 1995년도에 한국으로 망명한 후 북한에 전단 보내기 사업 등 반공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선생은 북한에 있을 때 농사시험소에서 근무하면서 농업 지도차 북한 전역을 두루 다녔기 때문에 북한 사정에 매우 밝은 분이었다. 가끔 주일 예배 후 한인식당에 가서 점심을 같이하면서 북한 사정을 듣는 것이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 퍽 도움이 됐다. 어느 날 이 선생이 북한의 식량난의 원인이 주체사상 때문이라고 하면서 아래와 같은 얘기를 들려 주었다.

북한은 70년대 말까지 년간 500만 톤의 식량을 생산하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었는데, 1981년 김일성 주석이 '자연개조 5개항'을 시달하면서 "산에 나무를 베고 논밭 만들라"고 지시한 이후 북한 전역의 산들이 민둥산이 되면서 만성적 식량 위기를 초래하게 된 원인이 됐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같으면 관계장관이 산에 나무를 베면 치산치수가 안돼 한발과 홍수가 빈발하고 장마로 인해 토사가 밀려 도로, 철도, 하천, 항만은 물론 심지어 기존 논밭까지 황폐화돼 오히려 식량생산이 줄게 될 것 이라고 건의할 수 있겠지만, '수령 신격화'를 바탕으로 수령 지시의 완전성, 무오류성, 무조건 복종을 절대시하는 '유일영도 10대 강령' 때문에 아무도 감히 건의를 못하고 수령 지시대로 산에 나무를 깡그리 베어 논밭을 만든 결과 한발과 홍수로 인해 기존 논밭까지 망가지면서 오히려 식량 생산이 매년 100만 톤씩 줄면서 식량위기가 만성화 되었다는 얘기였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얘기지만 북한 사회에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주체사상의 병폐적 현상인 것이다.

수령 신격화에 얽힌 또 하나의 병폐적 현상으로서 '유경호텔'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의 남성 패션잡지 에스콰이어(Esquire)지는 2008년 5월호에 세계에서 가장 혐오감을 주는 '인류최악의 건물'로 평양의 유경호텔을 선정한 바 있다. 역시 내가 모스크바 근무 시절 소련으로 망명한 김춘학 인민군 상좌로부터 들은 얘기다. 1987년 초 어느 날 갑자기 김정일 지도자가 김일성 주석 80회 생일(1992년 4월 15일)에 헌납하기 위해 평양 시내 한 복판에 105층 3000 객실을 보유한 세계에서 제일 큰 호텔을 지으라는 '통 큰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평양은 수령 독재체제의 극단적 폐쇄성으로 인해 세계 어느 나라 수도보다 인적 왕래와 교통량이 적은 곳이다. 일예로 강영훈 총리가 남북 총리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판문점을 거쳐 평양으로 갈 때 고속도로가 너무나 한산해서 도대체 몇 대의 차량이 지나가는지 수행비서관이 확인해 봤는데 고작 16대였다고 하니 우리 경부고속도로와 비교하면 천지차이라 할 것이다. 평양처럼 인적이 한산하고 교통량이 적은 곳에 세계에서 제일 큰 호텔을 지으라는 것은 실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지시였지만 역시 수령 지시의 완전성, 무오류성, 무조건 복종을 절대시 하는 '수령 신격화' 때문에 아무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1987년 8월부터 프랑스 기술진을 불러들이고, 동독과 첵코로부터 최고급 건축자재를 들여오고, 스웨덴으로부터 차관을 얻어 공사를 진행하던 중 유류파동으로 인해 차관 길이 막히면서 프랑스 기술진이 철수하고 건축자재도 들여 올 수 없어 골조만 세운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된 채 오늘날 평양시내 중심가에 우중충하게 유령처럼 서 있게 됐다는 얘기였다.

수 많은 인민이 굶어 죽는 극심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4억 불의 거액을 들인 건물이 아무 쓸모 없이 방치되어 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우리가 북한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촌치의 착오도 용인하지 않는 주체사상의 '철벽성'과 그 바탕이 되는 '수령 신격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 전제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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