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福館, 待福館

大福館, 待福館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유석균 목사
2015년 01월 12일(월) 17:17

대복관은 필자가 섬기고 있는 교회 인근에 저희 교회 청년들과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중국집 이름이다. 4인용 탁자 두 개, 사장 겸 주방장과 배달하는 청년이 고작이었다.

음식 맛은 다른 중국집보다 월등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도 '대복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사장 때문이다.

교회 학생들이나 청년들이 대복관에 짜장면 또는 짬뽕을 시킬 때면 항상 주문량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먹을 사람이 몇 명이냐를 묻는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돈이 없어 먹을 사람은 10명인데 짜장면 6그릇을 주문하는 것이다. 사장은 짜장면 6그릇을 주문받고는 먹을 사람이 몇 명이냐고 되묻는 것이다. 그러면 두 말도 하지 않고 10인분을 배달해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탕수육까지 말이다. 사장의 관심은 주문량이 아니라 먹을 사람에 있었던 것이다.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남는 것이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확고했다. "배고픈 자들의 고통에 비하면 돈이야 조금 적게 벌면 어떻습니까? 한창 먹을 나이에 돈이 없어 먹지 못 하는 아이들 생각하면 조금 넉넉하게 갖다 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주문량보다 공급량을 우선하는 삶, 자신의 유익보다 너의 필요를 더 생각해주는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것이 아닐까? 또한 주님의 산상수훈의 핵심 내용과도 일치하지 않을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현장은 어떤가? 상위급(노블레스)에 있는 자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유익만을 극대화하려고만 하고 서민층들의 유익에는 전혀 무관심한 행동과 무시와 경멸스런 행동을 드러내 놓는 것이다. 반면에 서민층들도 실패와 가난에 대한 한을 가슴에 품고 분노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적 갈등이 뿌리를 내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대복관이 중요하다. '대복관'을 찾아 아름다운 사랑과, 배려와 따뜻한 정을 먹고 나누는 것도 의미 있는 큰 행복이리라.

성경에도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다. 자신의 무덤을 내어놓은 아리마대 요셉, 바울의 쓸 것을 돕고 그를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들의 목숨이라도 내어 놓을 각오가 되어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어렵고 가난한 처지임에도 생활비 전부를 드린 과부, 어려운 형편에서도 고이고이 준비해 두었던 향유옥합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게 불행이고 서글픔이다. 대복관 사장도 문을 닫고 이사를 가버렸다. 대복관이 사라져버린 동네는 더욱 싸늘해져가는 것 같다. 대복관(大福館, 待福館)! 큰 복의 집, 복을 대망하는 집! 복을 대망하는 자들에게 베풀 줄 아는 대복관, 큰 복의 집이 이곳저곳 생겨나야 하겠다.

유석균 목사 / 병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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