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생명이 담겨 있다

말에는 생명이 담겨 있다

[ 주혜주 교수의 마음극장 ] 마음극장

주혜주 교수 joohj@kic.ac.kr
2015년 01월 09일(금) 10:40

아침에 출근해 보니 간밤에 응급실을 통해 외국인 환자가 입원했다. 주치의를 맡게 된 의사는 간호사실에 앉아 걱정이 태산이었다. 환자와 영어로 대화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어서였다. 한참 동안 간호사실에서 한숨짓던 주치의가 마침내 환자 방을 향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면담을 하러 환자 방에 들어갔던 주치의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얼굴이 벌게져서 간호사실로 돌아왔다. 간호사실에 있던 모든 치료자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대답인즉슨, 병실에 들어갔더니 환자가 잠을 자는지 눈을 감은 채 침대에 누워 있더란다.

영어로 말을 하려니 가뜩이나 심란한데 눈까지 감고 있어 더욱 난감해진 상황. 외국인 환자에게 눈 좀 떠보라고 "오픈 유어 아이즈"라고 말한다는 게 자기도 모르게 "오픈 더 도어!"라고 했단다. 다행히 문 열라는 의사의 말에 환자가 문 아닌 눈을 떴다. 주치의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지만 눈 떠보라는 간단한 문장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한 꼴이었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개떡같이 말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들은 환자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우리 인간은 옹알이로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말을 하며 산다. 고대 중앙아메리카의 톨텍(Toltec) 인디언들은 말 속에 생명이 담겨 있다고 믿었으며, 생명을 지닌 말이 그대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요즘 들어 새록새록 알려지기 시작한 인디언 말들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슴에 큰 울림을 주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인가 보다.

   
▲ 이경남차장 knlee@pckworld.com

 
이처럼 생명력 있는 말 덕분에 말로써 기쁨과 힘을 받기도 하지만, 반면에 말 때문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말에는 이중성이 있기 때문이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라는 모로코 속담처럼 때로는 말 한 마디가 평생 지워지지 않는 가슴의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Elizabeth Dickinson)은 말이 지닌 생명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입 밖에 나오는 말은 죽는다고.
 그러나 나는 말한다,
 말은 바로 그 순간 살기 시작한다고.
 
옹알이에서 시작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말을 계속 사용해야 할 우리들은 살아 숨 쉬는 한 소통을 잘 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주혜주 교수/경인여자대학교 정신간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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