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와 마주했을 때

슬럼프와 마주했을 때

[ 4인4색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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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23일(화) 13:56

이예랑
국악방송 MCㆍ동안교회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몸과 마음도 더 약해지는 듯 하다.

9년 전 어느 봄, 필자는 아주 심한 슬럼프에 빠진적이 있다. 다행히도 가장 힘들때 기도로 하나님을 붙잡았다. 기도 끝에 가야금 콩쿨에 출전하기로 결정했다. 잡념없이 연습에만 집중하다보면 슬럼프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처방이었다.

다섯 시간 동안 직접 운전을 해 가장 규모가 큰 가야금 콩쿨인 김해전국가야금대회장에 도착했다. 비행기나 기차로 이동했으면 좋았겠지만 어머니가 참가를 반대했기 때문에 장거리 운전도 마다않고 달려갔다. 대학에서 가야금을 가르치시던 어머니는 당시 어린 필자가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봐 출전을 만류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국악계에서의 연륜과 명성도 무시할 수 없는 대회였기 때문이다. 평소 부모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던 나였지만 그땐 좀처럼 의지가 굽혀지지 않았다.

쟁쟁한 참가자들을 보고 기가 죽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예선을 통과했다. 그때 대기실 한 모퉁이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해주세요." 실수를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좋은 연주를 하고픈 마음에서 드린 기도였다.

내 순서가 되자 담담히 연주를 시작했고 한창 중요한 부분을 연주하는데 가슴에 부착한 번호표가 가야금 줄과 줄 사이에 끼어버렸다. 연주를 멈추면 자동으로 실격 처리된다.

그 긴박한 순간에 필자는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 드렸더니 포기할 순간을 주시는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시고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거야!"라는 확신을 갖고 명찰이 끼인채로 등이 굽은 사람처럼 엎드려 끝까지 연주를 마쳤다.

뒤에 들으니 심사위원들은 명찰이 낀걸 몰랐고 그냥 연주에 심취해 가야금에 파묻힌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필자는 본선을 통과해 결선까지 오르게 됐다. 그러나 대통령상을 겨룰 상대는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진 병창(竝唱) 명인이었고, 어머니는 그만 물러서는 것이 좋겠다며 기권을 권하셨다. 24세의 젊은 여성을 바라보던 모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그랬다.

나는 다시 기도했다. 그리고 다시 무대에 올랐다. 객석 중앙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용기를 냈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귀에까지 들려왔다.

연주를 시작하자 하나님은 내 연주를 듣고 계시기도 하지만 또 내 손을 어루만져주고 계심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많은 훌륭한 연주자들 사이에서 작아질 대로 작아져 있는 필자에게 주님은 편안한 호흡과 연주자로서의 사명감을 주셨다.

공연이 아닌 경연이었지만 연주하는 동안 관객들의 박수가 두번이나 터져 나왔다. 필자도 연주하면서 속으로 '좋다! 얼씨구!'하며 추임새를 던지고 있었다. 내 손은 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콩쿨에 출전해서 내 연주를 내가 감상하고 있다는게 말이 되는가.

기도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심사위원 한 분은 기권했고 열한 분 중 열 명의 표를 얻어 최연소 대통령상을 받게 됐다. 기도를 얼마나 잘 들어 주시는지 하나님은 그날 최상의 연주를 허락해 주셨고, 지금도 그만한 연주가 안 나오는 듯 하다. 당시에는 슬럼프를 이겨내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약할때, 또 그래서 그분을 깊이 의지할 때 어려움을 이겨낼 사랑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 같다. 힘들고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신앙을 지켜가게 된다.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신앙을 지키기가 더 힘든 자신을 돌아보면, 오늘의 어려움도 감사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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