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쇄 작용

상쇄 작용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고일호 목사
2014년 08월 25일(월) 18:55

목양실 바깥벽에 작은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손양원 목사님 순교 기념관에 갔을 때 구입한 그 유명한 '아홉 가지 감사'가 새겨진 액자다. 가끔씩 복도를 지나가던 교인들이 발걸음을 멈춰 액자 안을 들여다 보곤 한다. 나 또한 틈틈이 그 앞에 서서 하나 하나 읽으며 묵상해 본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특별히 마지막 감사제목을 읽을 때 가슴이 아려진다. 슬픔과 시련을 감사로 승화시킨 그 위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겪어야 했던 괴롬과 눈물의 삶을 보기 때문이다. 손양원 목사님이 말씀하신 역경은 교회 부흥이 안 돼 힘들어 하는 목회자들의 어려움과는 다른 차원의 역경일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목회를 하면서 그렇게 큰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다. 이유는 내가 잘났고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교회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안에 좋은 성도들이 있고 덕스럽고 은혜스러운 영적 전통이 있다. 그래서 모자람이 많은 나 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평안히 목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차라 할지라도 거친 길을 가면 흔들리고 덜컹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볼품없는 중고 자동차도 잘 닦인 도로를 달리면 평안히 갈 수 있다. 좋은 도로가 좋지 않은 차의 약점을 상쇄해 주기 때문이다.

목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목회자가 좀 부족해도 교회가 좋으면 평안하고, 반대로 교회가 부족해도 목회자가 좋으면 평안하게 되는 것 같다. 서로의 약점을 상쇄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의 상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가 유능하고 좋은 은사를 가지고 있어도 교회의 풍토가 좋지 않거나, 교회가 아무리 은혜스럽고 좋아도 목회자가 바르지 못한 목회를 한다면 서로의 장점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즉 부정의 상쇄가 작용하는 것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서로가 좋은 방향을 택하려 한다면 목회자와 교회 사이에 긍정의 상쇄 작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상대방만을 탓하면서 비난한다면 목회자도 교회도 평안치 못할 것이다. 굽고 거친 길이 있을 때 그 길만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장비를 들고 가서 그 길을 평탄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듯이 각자의 교회 안에 좋은 길을 만들려고 나서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것만이 목회자도 교회도 평안할 수 있는 길이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평안함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교회를 돌보고 섬겨온 선배 목회자들과 장로님, 그리고 제직과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나는 그 분들이 닦아 놓은 좋은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내가 늘 조심하는 것은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좋은 길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 길을 잘 가꾸고 보존하여 다른 누군가에게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목회현장에서 여러 가지 역경을 만나 힘들어 하는 동역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정말 좋은 교회를 만났다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분들도 있다. 또 여러 가지 분규로 아픔을 겪는 교회도 있을 것이다. 그 교회들이 좋은 리더를 만났다면 한국교회의 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서로 잘못 만났음만을 탓하지 말자. 이제부터라도 굽은 길, 거친 길을 바르게 하는 심정으로 갱생의 삽을 들자. 그리고 모두의 평안을 위해 목회자와 교회가 함께 새 길을 만들어 보자.

고일호 목사 / 영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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