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과 청년 (1)성장, 가능한가

교회 성장과 청년 (1)성장, 가능한가

[ 특집 ]

정영택 목사
2014년 06월 30일(월) 19:03

어른들의 '포용력'이 청년 모은다

정영택 목사
부총회장ㆍ경주제일교회

1907년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가져오게 하는데 가장 큰 실마리를 제공한 하디 선교사는 한국인의 거짓과 외식 그리고 게으름과 무지 때문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눈물로 회개했다. 자신의 교만과 우월감과 게으름 탓이라고 고백했고 그의 회개운동이 이어져 한국교회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고 크게 번졌다.

교회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이 땅에 교회부흥이 어려워지게 된 책임은 바로 지도자들의 위선과 거짓, 교만, 게으름에 있음을 고백한다. 그 중에서도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못했음을 더욱 더 크게 소리높여 회개한다. "청년 여러분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했습니다. 청년 여러분들의 용서를 진심으로 구합니다"

청년 부흥은 과연 가능할까? 청년에 대한 이론적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21세기 한국사회 바로 우리 시대에 교회의 청년부흥은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도시의 몇몇 교회는 청년이 넘치고 심지어 청년 중심의 목회가 성공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청년부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교회가 많은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심지어 노회에 청년회연합회 조차 구성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교회 청년회는 교육자원부의 지도를 받기는 하지만 총회에는 청년을 위해 전문적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제시하고 지도해 주는 청년위원회조차 없는 상황에서 청년 부흥은 과연 가능하겠는가 말이다. 이런 현실 속에 이단과 사이비 단체들의 신앙운동이 교회의 건강한 청년들을 찾아다니며 유혹하고 있다.

또한 몇몇 선교 단체들에 소속된 젊은이들은 교회 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같은 일들을 생각해 보면 교회가 청년부흥의 목회적 생태를 갖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더우기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불미스러운 일들은 청년들을 교회에 머물게 할 수 없을만큼 창피한 일들이 많다. 과연 교회에서 청년부흥은 가능할까?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현실이 암울하고 극복해야 할 산이 높고 많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교회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미래를 위한 세대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세대가 어디 있겠는가만은 청년 세대는 교회의 허리인 까닭에 그만큼 더 중요한 것이다. 교회의 미래라기 보다는 교회의 곧 닥쳐오는 내일의 모습을 예측하게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중요한 것이다.

허리가 죽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허리가 끊어지면 밝은 내일은 보장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 세대의 부흥이야말로 교회 부흥의 핵심 계층으로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청년선교에 접근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어떤 방법론 보다도 교회가 당회로 부터 시작해서 모든 어른들이 청년에 대해 마음을 활짝 여는 포용성을 갖는 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과제라고 본다.

교회의 청년부와 관련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교회에 젊은이들이 모이지 않고 무너지고 있었다. 당회에서 여러가지 방도를 궁리하였지만 뾰족한 수를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은 교회 안에서 젊은이를 위한 부서를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 몇몇 안되는 젊은이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모여 모임을 가져보겠다고 했다.

청년들을 지도하는 교역자도 없이 자기들끼리 기타와 드럼을 들고 모였다. 몇 사람 되지도 않는데 어른들이 보기에는 시끄러운 모임, 못마땅한 모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만두라고 할 수가 없어 그대로 방관하는 상태에서 몇 달이 지났는데 이상한 것은 그 모임이 계속 되었고 젊은이들도 몇 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무언가 못마땅 한듯 보였으나 그들은 계속 모였고 여전히 시끄러웠고, 무질서했으며 염려스러웠다. 교회의 한편에서는 청년들의 이같은 모임을 중단시키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없어지는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되어 그대로 두었더니 젊은이들의 모임이 살아났다는 것이다. 당회는 청년들에게 "죄를 짓는 일만 말고 너희들 마음대로 해보라"며 가벼운 주의를 주고 청년들을 격려하고 후원했더니 청년부가 다시 되살아났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에서와 같이 교회에서 청년부가 살아난다면 당회는 이 이야기처럼 그대로 할 수 있을까? 시끄럽고 무질서하고 염려스러워 보여도 죄짓는 일 외에는 너희들 마음대로 해보라고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청년부의 부흥에 가장 우선적인 것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청년을 향한 포용력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빨강머리를 하든, 노랑머리를 하든, 옷의 길이가 짧아지든, 길어지든, 시끄럽게 보이는 찬양을 하든, 춤을 추든 그들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면 칭찬하고, 격려하고, 응원하고, 배려해주는 포용력 말이다.

청년들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먼저 물어보고, 청년들이 하고싶은 것이 있다면 이단에 미혹되는 것이 아닌지 정도만 살펴서 무엇이든지 허락할 수 있는 포용력이 절실하다. 포용력을 발휘해야 청년부흥의 토양을 만들 수 있다. 포용력으로 청년부흥의 토양을 만드는 것은 교회의 성장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교회 미래의 중추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여 청년을 위해 교회 문을 활짝 열고 마음껏 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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