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눈물

농부의 눈물

[ 기획 ] <연중기획>이웃의 눈물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4년 01월 17일(금) 14:37

<농부의 눈물①>
빚 얻어 농사 짓다가 부채 감당 못하고 마을 떠나… 
허리 못펴고 1년 농사 지어도 통장에 남는건
몇 백만원 … 못견디고 떠나 빈 집 수두룩 
가뭄ㆍ태풍 등 재해 입으면 오히려 빚더미
 
<전문>
연중기획 '눈물'을 시작하며…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기를 원하신다. 우리 이웃들은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그 눈물을 보며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본보의 연중기획 '눈물'은 기획됐다. 그 첫번째 대상으로 오는 3월까지 '농부', '이주민', '장애인'을 선정해 이들의 눈물을 기억하고, 주님의 위로를 전하려 한다.
 

   
▲ 장시간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면 구토, 빈혈 등을 동반하는 '하우스 병'이 생긴다. 새벽5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해도 1년 순수입이 1배만원인 현실에 노장석 장로(62세ㆍ구만리교회)는 답답하기만 하다

【충주=표현모 차장】 "1년 농사 다 짓고 난 후 통장에 300~400만원 있으면 행복한 거죠. 어느 해는 부채만 떠안는 경우도 있어요. 우리 마을에 빚 얻어서 농사지었다가 몇 년간 늘어난 부채가 감당 안되서 떠난 집이 여럿이에요. 우리 마을에도 빈집이 여러 집 있습니다. 1년 동안 농사했는데 순수입이 100만원 나왔어요. 돈 생각하면 힘이 빠지죠. 막말로 도시 가서 공사판에서 2주일만 일해도 100만원 받는데 말이죠."

충북 충주시 엄정면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온 노장석 장로(62세ㆍ구만리교회)는 한해 농사를 끝낸 후 통장을 볼 때마다 깊은 한숨이 나온다. 각종 채소 및 고구마를 재배하는 농토 3000평, 비닐하우스 600평에서 농사를 짓는데도 불구하고 일년 농사를 마친 후 손에 쥐는 돈은 거의 없다. 경제적 관점에서 말하면, 농사는 그야말로 수지가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토지와 자본, 인건비, 재료비에 두 부부가 매일 같이 새벽 5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허리 한번 못 펼 정도로 수고하며 노동력을 투자하는데 연 순수입이 100만원이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경제성 없는 투자인 셈이다. 여기에 가뭄이나 태풍 피해라도 입는 해이면 오히려 빚만 남는다.

60대 임에도 불구하고 노 장로는 엄정면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농부이고, 5~6개 농민 단체의 수장을 맡았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 인정받는 농부인데도 사정이 이렇다.

"자녀가 대학을 가는 경우 그건 다 빚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빚은 자식이 안고 가던지 부모가 안고 가는 거죠. 여기에 병이라도 걸리게 되면 정말 답이 없어요. 몸만 건강해도 사는데 농부들은 몸을 혹사해서 병을 달고 살거든요. 특히 허리, 무릎 등 관절이 안좋은 분들이 많아요. 농촌마다 병원 물리치료실에는 항상 자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나마 저는 건강한 편이라 다행이지요."

노 장로의 말을 경청하던 구만리교회 담임 김명술 목사가 거든다.

"노 장로님도 사실 몇번 쓰러지실 뻔 하셨어요. 하우스병이라고 장시간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면 구토, 빈혈 등의 증상이 생기거든요. 하우스에서 십여 시간 일하면 쓰러지시는 분들이 많아요. 권사님의 경우도 무릎이 안좋아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하는데 수술을 안받으셔요. 왜냐하면 수술을 받으면 노동을 못하니까. 농부들 수입도 별로 없지만 그 수입의 절반마저 병원비로 나갈거예요."

일반 농민들의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사실상 농민들을 위한 정책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후 최근에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중국과의 FTA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농민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노 장로는 불만이 많다.

"현재 정부는 강한 소농을 키운다는 슬로건으로 밭 5000평, 논 1만평 이상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1억 이상의 수입을 올리게 하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사실 기업농만 살게 하고 다른 농민들은 다 죽게 되요. 소농들은 그 평수의 농사를 감당하지 못하거든요. 게다가 정부는 물가를 잡을 때도 농산물 가격을 올리지 못하게 해서 물가를 잡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요. 그래서 농민들은 농사가 안되도 걱정이고, 잘되도 걱정입니다. 정부의 농촌 정책, 그리고 언론이 이에 협조하는 것을 보면 환멸까지 느껴져요."

노 장로는 이렇게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지난 15년간 유기농업을 고집하고 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길러낸다는 농부로서의 양심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농부로서의 양심도 내심 흔들릴 때가 있다고 한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도 판로가 부족해 중매인에게 일반 농산물 이하의 가격으로 넘겨야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그의 한숨 섞인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김 목사가 이야기를 보텐다.

"아무리 유기농산물을 재배해도 판로가 없어요. 그 엄청난 노력이 다 헛수고로 돌아가버리는 거죠. 도시의 교회가 시골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판로를 열어줬으면 좋겠어요. 교회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농민들이 버티지 못하고, 그러면 시골교회들도 버틸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끝으로 노 장로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농업의 전망을 이야기하며 한층 더 우울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정부의 농업 예산은 타 예산에 비해 너무 적게 올라요. 말로만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실제 한 해 지나가면 아무것도 없어요. 농업예산 혜택은 대부분 기업농과 그 뒤에 있는 자본가, 유통하는 사람 등이 가져가죠. 실제 우리 농민들은 보조는 거의 못받고 융자만 받을 수 있게 해줘요. 'FTA에 위반된다'며 보조를 주지 않는거죠. FTA도 몇 년에 걸쳐 개방이 되기 때문에 사실 농민들도 잘 느끼지 못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더 어려워질 겁니다. 뜨거운 가마솥의 개구리 이야기 아시죠? 서서히 뜨거워져서 느끼지 못하고 죽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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