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고향

선교사의 고향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

권경숙 선교사
2014년 01월 16일(목) 10:02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
 
아프리카 여자들의 일생은 대부분 기구하다. 그들은 자식에게든 남편에게든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한다. 심지어 나이지리아의 어떤 부족은 자식을 낳아 다 키우면 남편과 아이들이 작당해서 엄마를 창녀로 내보낸다. 나는 이런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았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마니만누라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만니만누라는 2004년 말 우리 교회에 왔다. 50대 중반을 훌쩍 넘겼을 것으로 추정된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며 기도해 달라고 했다.

"미셔너리 저는 빨리 나오고 싶어요." "어디서?" "이 생활에서요." 만니만누라는 1년 전 모리타니에 왔을 때부터 창녀 노릇을 했다고 한다. 나는 만니만누라가 빨리 그 일을 그만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그러던 중 만니만누라가 거의 3년에 걸쳐 100달러를 모으자 난 즉시 그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이후 만니만누라는 억척스럽게 생선을 팔았다. 덕분에 곧 2만불씩 생선을 사 말리는 거상이 되었다. 만니만누라는 컨테이너를 하나 사서 거기다 말린 생선을 잔뜩 싣고 내륙으로 가서 팔고 온다.

"전 정말로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받았다고 생각해요. 교회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죽었거나 아직도 창녀를 하겠죠." "그래. 네가 지금 행복하게 사는 것도 하나님 축복 때문이지." 그녀는 자신을 창녀로 판 남편과 아들을 모두 용서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만니만누라에게 또 한번의 은사를 베푸셨던 모양이다.

몇 해 전 고난주간을 지나 부활절이 얼마 남지 않은 주일이었다. 교인들의 발을 씻겨줄 때 문득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내 영혼은 기쁨에 차서 할렐루야를 외쳐도 몸이 고물차처럼 말을 안 들었다. 숨을 쉬기 힘들었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발을 씻길 물을 들지도 못했다. 누군가 내 가슴에 손을 쑥 집어넣어 심장을 쥐어 뜯는 듯했다. 며칠 뒤 주일에 설교를 하는데 팔은 강대상을 잡고 있지만 몸은 점점 주저앉았다. 이러다 정신을 잃고 혼절하겠다 싶을 만큼 눈앞이 캄캄하고 숨이 가빠왔다. 나는 얼른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고통 없는 천국에 가는 것이 두렵지 않지만 누군가 남아서 나의 뒤처리를 할 것을 생각하니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해 7월초 마침내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눈부시게 흰 모리타니의 모래 언덕을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겠구나."

심근경색이었다. 광주의 한 병원에서 심장 혈관을 넓히는 수술을 받았다. 퇴원하자마자 일산으로 갔다. 지상에서의 내 삶이 얼마나 곤고한지 수술 후 깨달았다. 어느 새 나에게는 간병해 줄 남편도 자식도 어머니도 없었다. 한국은 이미 만리타향이었다. 회복하는 동안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나의 고향이 아니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모리타니로 달려가고 싶은데, 회복 중에 다시 한번 쓰러졌다. 막힌 심장 혈관은 한 군데만이 아니었다.

"하나님, 일꾼이 신통찮아 다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제가 회복해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길 잃지 않게 잘 지켜주시옵소서." 환자복을 입은 채 병실에 누워 있으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회복은 나이 탓인지 쇠약한 탓인지 참으로 더뎠다.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쓸려다니다가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푸라기로 된 몸이라도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어주시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섯 달 가량 비운 교회는 마치 어제 집을 비운 것처럼 그대로였다. 일꾼들과 교역자들은 서운할 정도로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집에 와 보니 생과 사를 넘나들던 그간이 시간이 마치 하루 같았다. 다시 돌아온 것에 감사하며 나는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감사하게도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투닥거리고 언성을 높이는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교인들은 그동안 아무도 죽지 않았다. 몇 년 전에는 일 년에 32명이 죽어 나갔는데 넉 달 동안 한 명도 아프지도 않고 한 명도 죽지도 않았다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이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들처럼 움직이면 사고가 일어나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예배 시간에 심장에 스턴트를 두 개나 박은 나의 상태를 설명해주었다. 나는 이제 덤으로 사는 인생이란 것도 더불어서 말했다. "저를 다시 이곳에 보내주신 것만 봐도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그제서야 교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 만난 기쁨을 표현했다.

내가 아프리카에 와서 확인한 또 하나의 기적, 그러니까 내가 없어도 교회가 평안한 것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는 마음에서다. 나는 수술과 지루한 회복기간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첫 마음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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