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서의 탈출…돈모아 자립 길 안내

가난에서의 탈출…돈모아 자립 길 안내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

권경숙 선교사
2014년 01월 09일(목) 10:05

"14년 동안 '사설은행' 노릇"
 
아프리카에 기근이 들면 교도소의 죄인들이 먼저 굶어 죽는다. 그 다음은 길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이다. 1998년 모리타니의 상황은 생물이란 생물은 모두 뼈와 가죽만 남을 정도로 비참해졌다. 그때 죄수 중 한 명이 내게 서툰 불어로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너무 배가 고픕니다. 나는 이땅에 태어난 게 정말 슬픕니다." 이 편지를 쓴 죄수는 결국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나 또한 하루 두끼 먹기가 힘들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죄수들에게 갖고 갔다. 감자도 삶아가고 우유죽도 끓여서 가지고 갔다.

그들은 무슬림도 못하는 일을 크리스찬들이 한다고 말하며 궁금해 했다. 내가 그들을 찾은 이유는 만약에 예수님이 오시면 가장 먼저 그들을 찾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그들이 죽기 전 회개하고 하나님을 만나 새 삶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주도 빠지지 않고 찾았던 것이다.

주일 아침은 늘 바쁘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기도한 뒤 감옥에 가지고 갈 우유죽부터 끓였다. 예배를 마친 교인들까지 먹이려면 300인분 이상을 끓여야 한다. "이 우유죽을 먹는 사람에게는 계속 주님 음성을 들려주시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예배가 끝나면 나는 우유죽을 들고 죄수들을 만나러 간다. 죄수 중에는 드물게 부자도 있다. 이들은 주로 횡령이거나 정치범이었다. 시다트는 백모로족 죄수로 한때 '승려'라는 이름의 철강회사의 회계를 맡은 사람이었다. 이 회사는 모리타니에서도 손에 꼽히는 기업인데 그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횡령했다. 그는 교도소 음식 대신 집에서 만들어서 넣어주는 음식을 먹는 특권을 누렸다. 그런데 그가 뜻밖에도 우유죽을 너무나 먹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가 죽을 입에 넣으려하면 "시다트"라는 소리가 크게 들렸단다. 어찌된 노릇인지 그 다음주에도 우유죽만 먹으려면 음성이 들렸다. 그는 곧 풀려났고 바로 날 찾아왔다. "미셔너리, 제게 불어성경을 주십시오. 우유죽을 먹으려고 하면 누가 자꾸 제 이름을 불렀어요." 나는 내일 새벽에 찾아오라고 말했다. 성경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매일 새벽 두 시만 되면 성경을 들고 날 찾았다. 시다트는 나와 함께 성경읽기를 하고 새벽예배를 드리고는 집으로 갔다.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성경읽기에 빠지지 않았다.

그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자 13명이나 되는 가족들도 어느 날부터 예배에 동참했다. 한동안 시다트의 가족은 우리 교회에서 유명했다. 그는 무슬림이고, 다른 교인과 달리 돈과 권력을 가진 고위층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다트와 가족들은 모두 세례도 받았다. 세례를 받자마자 그는 가족을 이끌고 무슬림 국가가 아닌 세네갈로 이주했다. 그는 지금도 모리에 올 때마다 안부를 전해온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정말로 급하셨나보다"라는 것이었다. 세네갈로 이주하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교육을 끝내라고 명령을 내리신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단시간에 무슬림 가족이 세례를 받겠는가. 감사할 뿐이다.

한편 여자 교인들의 대부분이 창녀인 바람에 우리 교회는 특수목적을 가진 교회가 돼 버렸다. 창녀를 그만두는 게 당연하지만 당장 그만두면 먹고 살 길이 없었다. "하나님 도대체 저들을 어떻게 구원해야 합니까?" 기도 끝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닷가 생선이었다. "너는 몸을 팔아 돈을 벌고 있어. 빨리 탈출해야 해. 이제부터 2달러를 벌면 1달러는 꼭 저금해라."

그녀들은 몰래 교회로 찾아와 내게 돈을 맡기고 갔다. 난 그녀들이 보는 앞에서 봉투에 금액을 적고 액수를 확인시켰다. 그때부터 난 교인들의 사설 은행이 되었다. 스위스 은행처럼 누가 얼마를 맡겼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난 200달러 정도 돈이 모이면, 교인들을 불러 생선을 사게 했다. 200달러 정도 모으는 데 보통 1~2년 정도 걸렸다. 생선을 사서 깨끗이 손질해서 말린 다음 내륙으로 가지고 가서 팔면 몇 배 이익이 남았다. 음식솜씨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튀김장사도 시켰다. 자주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돈을 빨리 모았다. 이렇게 해서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면 작은 돈이라도 헛되이 쓰지 않고 그러다 보면 곧 십일조를 내는 교인이 된다. "미셔너리, 생선장수를 하니까 좋은 점이 있어요. 경찰이 안 와요." "봐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하니까 축복해주시지 않니?" 경찰이 안 오면 돈을 더욱 많이 모을 수 있다. 창녀를 할 때는 경찰들이 와서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뜯어갔다. 그러나 생선장수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경찰도 비린내 때문에 다가오지 않았다. 다들 생선장수를 몇 년만 하면 먹고 살만한 터전을 마련했다. 이를 위해 나는 발바닥 부르터가면서 교인들의 사설 은행 노릇을 14년 간이나 했다.

본교단 파송 모리타니 권경숙 선교사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