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빛나는 청년들이여

별처럼 빛나는 청년들이여

[ 문화 ]

원영희 권사
2013년 12월 11일(수) 17:10

성탄에 읽는 수필

   
▲ 그림/김지혜

며칠 전, 작년에 졸업한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6개월여 애쓰다 취직했다는 전화를 6개월 전에 받은 후, 처음 온 전화인데,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다. 보통의 경우, 아이들은 졸업하고 나면 특별한 경우 빼고는 거의 연락이 없다. 그런데 이 제자는 취직이 되었다는 전화를 해 주어 나를 기쁘게 했었다. 사실 졸업 전부터 진로를 놓고 한두 번 상담도 하고, 취직되기 직전에도 학교로 와 또 이야기를 나누고 가기는 했다. '학교에 오겠다고? 무슨 일일까?'
 
스윽 지나가는 생각 하나. 취직이 됐다고 전화했을 때 뭔가 마음에 불편한 점이 있어서 축하를 해주다가 어떤 회사냐고 물었더니 아주 작은 회사라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기뻐하는 끝에 약간 걱정 어린 말을 내 비쳤더니, 밝은 목소리로 괜찮을 거라 했다. 그래서 정말 간절히 괜찮기를 바라며 전화를 끊었었다. 이번에 걸려온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그리 밝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얘기를 하러 오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을 했다. 약속한 날, 제자는 학교에 왔고, 전화를 받으며 불안했듯이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얘기를 털어 놓았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지난 해까지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는 28만명 증가했는데 청년층 인구는 오히려 40만 명이 감소했고, 청년층 인구 중 비경제활동인구 비중도 2005년 51.3%에서 지난해 56.3%로 상승했다고 한다.
 
교수 식당 앞에서 기다리던 제자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취직되기 직전 학교에 와서 얘기를 나누고 갔을 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원래 부끄럼을 좀 타긴 했지만 수업 중에는 밝고 정확한 논리로 말을 잘 하는 학생이었다. 깜짝 놀랐다. 변한 모습과 그 표정, 뭐라 말할 수 없는, 저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어둡고 불안하게 깜박이던 그 두 눈동자.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마음은 떨리고, 빨리 물어 보고 싶기도 했지만 우선 밥부터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왔니? 아침은 먹었니?" "아니요. 늦게 일어나서 바로 왔어요." 하는 말을 주고받은 후에는 아무 질문도 않고 정말 밥부터 먹었다. 말없이. 차를 한잔 씩 들고 조용한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 시작된 얘기. 울먹임의 시간도 이제는 사그라진듯 덤덤히 자신의 취업기를 쏟아놓는 제자. 눈을 바라볼 때마다 아주 심하게 깜박여서 시선을 피한 채 나는 듣고만 있었다.
 
사장을 포함해 여섯 명이 전부인 작아도 아주 작은 회사. 직원들은 모두 여자들이었다. 일은 재미있었다. 전공을 살릴 수 있었고 외국회사와 소통하고 시도한 일의 결과가 즉시즉시 나타나 성취감도 생기고 또 그 다음에 올 일들이 연결되어 기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단, 사장이 화를 내며 직원들을 야단 칠 때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라고는 없어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거의 욕에 가까운 표현을 한다는 것 빼고는 모든 게 흥미 있고 순조로워 보였다.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못돼 작은 소동이 있었는데 몇 안 되는 또래 직원 중 하나가 사표를 냈다. 그리 큰 소동이 났던 것도 아니어서 무심히 지나쳤다. 그리고 한 달 후, 사장실에서 큰소리가 난 다음날, 또 다른 직원이 사표를 내고, 곧바로 새 직원이 하나 들어왔다. 다섯이 하던 일을 넷이 하려니 처음보다 조금 힘들어졌지만 자연스럽게 퇴근 시간을 늦춰가며 열심히 일정을 맞추어 나갔다. 두 번째 달을 시작하면서 거래처 입금관계로 소동이 났고, 꽤 오래 일했다는-나중에 알고 보니 2년 반-대리급 직원이 사표를 던지고 나갔다. 그러니까 처음에 왔을 때 본 직원들 다섯 명중 대리를 포함해 세 명이 나갔으니, 자신도 아직은 신입이지만 어쨌든 자신보다 한 달 늦게 들어온 신입을 가르치며 일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한 달 쯤 후에, 다시 새 직원이 하나 더 들어와서, 이제는 둘을 가르치며 일을 해야 하니 마치 어느새 중견사원이 된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원래 있던 또래 여직원과 자연스레 친해졌고, 직원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얘기며, 이 회사는 원래 그렇다는 얘기도 주고받으며 지냈다. 불같은 성격으로 업무가 미진할 때는 소리를 쳐대며 공포분위기를 만들던 사장이 세 달 만에 새 직원들도 들어오고 했으니 회식을 한다고 했다. 저녁을 먹은 후, 자연스럽게 이어진 술자리가 교회를 다니는 자신으로선 부담스러워 양해를 구하고 일찍 일어섰다. 그리고 한 달 후, 유일하게 남아있던 몇 달 고참, 또래 직원이 사표를 냈다. 바야흐로 취직 네 달 만에 최고 고참이 된 나의 제자. 또래 직원 사직 이유는 사장의 성추행 때문이었다. 회식 이후에 이어진 술자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또래 직원은 근무시간 내내 불안해하며 사장을 피해 다니다가 결국 한달 만에 사표도 안 내고 나가버렸다. 다시 셋이 일하게 되어 일은 더 바빠지고, 고참 아닌 최고 고참이 되었으니 가르치랴 일 해내랴 숨이 턱턱 막혔지만 그래도 일자리가 있으니 감사히 일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어느 날, 제자도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부지런히 업무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장이 그 동안에 또 새로 들어온 신입직원을 포함해 전 직원 4명을 모아놓고 온갖 욕설에 가까운 말로 야단을 치더니, 이렇게 일하려면 다 나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에 제자는 거의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고, 그냥 회사를 나와 버렸단다. 그리고 2주가 흘렀고, 학교가 생각났고, 그를 가르친 선생이 떠올랐단다.
 
'아, 사랑하는 제자여.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네가 나를 똑바로 못보고, 내가 너와 시선을 맞추지 못한 까닭이 그거였구나.'
 
창밖으로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곧 크리스마스다. 우리들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삶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주시려 오신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다가온다. 문득 헨델의 메시야에 나오는 '할렐루야'를 성탄 찬양으로 준비하며 두근두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청년 시절이 떠올랐다. 예수님이 오신 사실은 당연한 사실이니까, 그 기쁨보다는 그 날이 있음을 더 기뻐하고 설레었던 때였다. 연습시간보다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시간이 더 길던 시절. 그렇게 맑은 청년들의 웃음을 누가 막을까?
 
청년을 살려야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살고 전 지구가 산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 빛나는 삶을 살도록 그 장을 만들어 주는 어른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2000여 년 전 예수님이 저 베들레헴 마굿간에 오신 기쁨을 나누며, 앞에 놓인 삶의 무게를 순식간에 가뿐하게 할 수 있는 저들이 바로 청년들이다. 학기가 끝나면 뒤도 안돌아보고 강의실 문이 부숴져라 빠져나가는 저들의 힘. 저들 모두가 좋은 일터로 인도 받기를, 그리고 취직했다는 전화를 안 해도 좋으니 어서들 다들 좋은 일터를 얻기를 기도한다. 넘치는 일자리가 널려 있어 고르느라 바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제자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제법 쏟아지는 눈발. 세상의 모든 추악함도 흰 눈으로 덮으면 다 깨끗해 보이는데. 그 못된 사장도, 약한 청년도, 우리들의 고통도, 서운함도! 찾아온 제자가 눈을 깜박이며 이야기 하는 동안 그 눈에 어린 그 어두운 빛이 그 눈동자에서 사라지기를 기도했다. 난 얘기를 들어주며 기도하느라 아무 것도 못했고, 하나님은 하얀 눈을 내려 주셨다. 훨씬 환해진 표정으로 흰 눈 속을 타박타박 걸어가려 길을 나서는 제자에게 말했다.
 
"사랑한다, 제자야. 네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그래서 너는 별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받아 빛나는 별. 차가운 겨울날에도 하늘 저 높이 빛나는 별처럼 맑고 눈부신 미래가 있는 청년이다. 너는 젊기에 모래사장에서도 유난히 반짝이는 모래알이다. 크리스마스의 예수님께서 너의 그런 소중함과 별처럼 빛나는 너의 가치를 알아볼 좋은 직장으로 인도하시리라 믿는다. 메리 크리스마스!"

원영희 권사 / 새문안교회ㆍ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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