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죽이는 법인가 살리는 법인가?

존엄사, 죽이는 법인가 살리는 법인가?

[ 교계 ]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3년 12월 09일(월) 11:46

2015년 법제화 앞두고 종교계 등 우려
사회 여론 존엄사 인정 쪽으로 기울어
 
 

   
▲ 기독공보DB


오는 2015년부터 소극적 안락사의 일종인 '연명치료중지(존엄사)'가 합법화 될 전망이어서 이를 둘러싼 생명윤리 논란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연명치료중지'는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인공호흡장치 작동 등을 중단해 자연적으로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연명의료를 계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를 환자가 결정하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8일 '연명의료의 환자결정권 제도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방안'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고 이 자리에서 환자의 명시적 의사, 의사 추정, 대리 결정 등에 따라 임종을 앞둔 환자의 특수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 초안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한 법안 초안에 따르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기 전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문서로 밝혔을 경우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의료행위를 중단할 수 있다. 문서가 없더라도 가족을 통해 연명의료와 관련한 환자의 뜻을 확인할 수 있다. 연명의료 중단 대상은 희생가능성이 없고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악화하는 임종기에 있는 환자로 규정했다.
 
환자의 명시적 의사 표시도 없고 환자의 의사추정도 불가능할 때에는 법정대리인이나 후견인, 성년후견인 등의 적법한 대리인과 가족 모두가 합의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뇌사의 경우에도 병원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중단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통증조절이나 영양공급, 물 공급, 단순 산소 공급 등 일반 연명의료는 중지할 수 없도록 했다.
 
또한, 이날 공개된 법안 초안에 따르면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여러 가지 사안을 심의하는 국가의료윤리위원회를 구성하고, 병원에는 연명의료와 관련해 의사를 결정하는 병원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법률안 초안은 존엄사 허용 주장이 나온 지 16년 만에 만들어진 것으로 일단 일반인들의 반응은 무의미한 연명 의료는 중단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지난 9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10명 중 7명꼴로 가족의 동의가 있다면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답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계와 의료계에서 생명존중과 인권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앞으로도 이에 대한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권고안 마련을 위한 특별위원회에 종교계 대표로 참여했던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 정재우 신부는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권고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대표적 종교인사다.
 
그는 생명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많이 약해져 있는 사회에서 법조문만을 만들어서 실행함으로써 잘못 또는 법의 정신에 맞지 않게 적용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는 특히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신이 무슨 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충분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의료중단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 그는 "의사의 소견이 고려되지 않고 그냥 작성한 것이 본인의 의향인 것은 맞지만 정말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유익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담당의사가 보고 다시 한 번 검토할 수 있는 여지가 필요한 것인데, 지금 그런 개념이 이 법안엔 담겨있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평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호스피스, 즉 완화 의료가 법 없이도 진행되는 상황에서 호스피스가 이미 하고 있는 것을 법으로 만들려고 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고, "연명의료 결정 법안을 만드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호스피스를 활성화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번 권고안에서 환자의 의지를 알 수 있는 문서가 없으면 가족을 통해서 연명의료와 관련된 환자의 평소 언행도 추정하고, 이마저 없으면 가족의 전원합의로 대리 결정할 수 있게 했는데 많은 분들이 가족이나 제3자가 이런 결정을 내리면 혹시 환자를 부당하게 죽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며, "이 법안이 원칙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대리 결정으로 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은 환자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브란스병원 의료선교센터소장 안신기 교수는 이번 보건복지부 권고안에 대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죽으면 '객사'라는 인식이 많아 임종의 순간이 되면 환자와 보호자가 집으로 모시기 원했다. 법적으로는 죽은 사체가 움직이는 것은 불법이므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의사의 권고에 반하는 자의 퇴원서를 쓰고, 의사가 따라가서 집에 가서는 인공호흡기 떼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은 많은 이들이 병원에서 임종을 하는 상황에서 이런 문화적인 변화도 연명치료 구분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라고 할 때 뇌사처럼 환자를 맡고 있는 의사가 환자의 상태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되었을 때 환자 본인이 충분히 자기의식을 가지고 이런 상황에서 생명연장을 지속하지 않겠다는 경우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그러나 이번 보건복지부의 권고안에 대한 우려가 많은 상황에서 시행까지는 시간이 남은 만큼 사회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보완해 가장 합리적이고 일반인들과 의료계, 종교계가 모두 수용할만한 법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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