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1월4~9일

[가정예배]11월4~9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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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01일(금) 10:22

월-가을에 기도하게 하소서
본문 : 시 20:1-9
찬송가 : 300장
 
1978년 1월 21일 오후 8시 경 대구에 있는 '아리아악기제조 주식회사'의 부사장 집에 다섯 명의 괴한이 칩입했다. 괴한들은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위협을 가했다. 괴한들은 알고 보니 회사의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무려 50%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한꺼번에 그렇게 임금을 많이 인상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회사는 세무 조사와 경찰 수사를 받게 되었다.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위기를 만났다. 이 사건은 주요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다. 사태가 발생한 후 사장은 제대로 된 직원을 골라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알고 보니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직원으로 채용하곤 했는데 그들이 고마워하기는커녕 인질극까지 벌인 것이었다.
 
사장님은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한 가지에 매달렸다. 그것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었다.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음을 믿었다. 눈물로 기도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사건이 보도된 신문을 박정희 대통령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악기 회사가 있었나?' 신문에 보도된 덕분에 대통령이 그 작은 회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 사실을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사람들은 모든 상황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상황을 듣고 난 후 대통령이 지시했다. "정말 나쁜 녀석들이군. 그런 녀석들은 손을 좀 봐야지.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젠 제대로 된 악기 회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새로 조성되는 구미 공단에 공장부지를 주고, 지원 좀 해 주세요!"
 
회사는 다음해 구미 공단의 6400평의 대지 위에 새 공장을 짓고 이사를 했고, 회사는 크게 발전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이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셨다. 이 회사의 사장은 하태봉 장로님이다.
 
살다보면 많은 환난을 만나고 극복하기 어려운 벽 앞에 서게 된다. 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오늘 읽은 시편 20편은 다윗의 시로서 다윗은 환난을 숱하게 겪었던 인물이다. 골리앗과 맞섰던 일로부터 시작해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들을 뛰어 넘으면서 살아왔다. 많은 전쟁을 겪었다. 사울 왕에게 쫓겨 죽음의 위기 속에서 살았다. 왕이 된 후에도 편안할 날이 없을 정도로 많은 시련을 만났다.
 
그런 환난의 날들을 통과하면서 다윗이 배운 최고의 교훈은 기도였다. 그는 오늘 시편에서 환난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권면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라! 하나님을 붙들라! 그 앞에 엎드리라!'고 한다.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이 거칠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위기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런 때에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믿음으로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종준 목사/동암교회


화-가진 것을 버려라
본문 : 눅 14:24~33, 몬 1:8~21
찬송가 : 510장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때에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 다녔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려고 따라다닌 사람도 있었고, 소문을 듣고 사실인가 구경하러 오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믿고 따르면서 말씀과 행동으로 위로를 받고 새롭게 변화되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 가지 기대를 갖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구라도,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지금 사람들도 이 말씀을 대하면 걱정이 앞선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버리면 무엇을 먹고 살지? 내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 아프거나 힘들면 누가 도와줄까? 이렇게 자기의 재산이나 물건에 대해 먼저 생각을 합니다. 불안해서 이 말씀을 모른 척하고 싶어진다.
 
당연한 고민이다. 요즘처럼 불안한 시대에는 더 돈이 필요하다.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집착하게 된다. 오늘 걱정도 모자라서 내일 걱정, 미래 걱정, 노후 걱정, 자식 걱정, 자식이 결혼해서 낳을 손자손녀까지 미리 걱정한다. 이렇게 걱정이 많아 불안하다보니 각종 보험이 생겨나고 티비에서는 하루 종일 보험광고를 해댄다. 광고하는 것을 들으면 또 다시 불안해진다. 심지어 신앙 생활하는 것도 마치 보험을 들듯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만나도 도움이 되는가부터 재본다. 이렇게 세상은 모든 것을 이용가치로 보게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태도를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오늘 병행해서 읽은 빌레몬서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빌레몬의 종(노예)이었던 오네시모가 도망쳤다가 잡혀서 바울과 같은 감옥에 갇혔다. 거기서 예수님을 믿게 된 오네시모를 바울이 그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쓴 편지가 빌레몬서였다. 이제는 빌레몬처럼 믿음의 형제가 된 오네시모, 나 바울을 봐서라도 이 종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편지였다. 빌레몬은 그 편지를 받고 어떻게 했을까?
 
당시에는 노예가 재산이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받아들인다면 그는 재산을 포기하고 형제와 친구로서 그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재산(재물, 소유)을 포기하고 사람을 얻었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다. 주께서 우리를 죄의 종이 아니라 친구와 형제로 받아주셨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주님처럼 사람을 소중히 대하여 친구로 형제로 맞이하겠습니다. 우리를 인도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금교 목사/누가교회


수-피리를 불면 춤을 추어라
본문 : 눅 7:29~35
찬송가 : 368장
 
본문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먼저 29절에 나오는 '모든 백성과 세리들', 이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통해 선포되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세례를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그 다음에 30절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 이 사람들은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 '정통 유대인'이라는 우월의식과 교만함으로 세례요한의 말을 거부했고, 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스스로 거부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나온 데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세례요한이 금욕생활을 했는데, 그것을 보고 '귀신들렸다'며 트집을 잡았다. 또, 세례요한과는 대조적으로 금욕생활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먹고 마시는 예수님을 보고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트집을 잡으며 예수님을 매도했다.
 
즉, '생활습관'을 가지고 문제 삼았고, 그것을 가지고 '말씀을 거부'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통해서 이러한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호통을 쳤다. '가장 못된 놈', '가장 악한 놈'이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아이들이 장터에서 혼례놀이, 장례놀이 하는 것으로 비유하신다.
 
'피리를 불고 춤을 추고…' 이것은 혼례놀이다. '곡을 하고 울고…' 이것은 장례놀이다.
 
그런데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다. 예수님은 35절에서 결론을 내리신다. "지혜는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 이 말씀은 '세례요한의 외침을 듣고 인정하여 세례를 받고,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을 듣고 옳다 인정하고 받아들여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우리도 웬만해서는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다. '길가 밭'처럼 닳고 닳아서, 들은 게 많아서, 귀가 고급이어서, '내가 누군데'하며 교만해서, 이런 저런 트집을 잡으면서 말씀의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스스로 거부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러므로 말씀의 피리를 불 때 춤을 추어라. 그 어떤 이유들을 달지 말고, '아멘'하며 믿고 받아들이는 자가 되자. 말씀을 듣고 깨닫는 '좋은 땅'이 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받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
 
<오늘의 기도>
그 어떤 이유도 달지 않고, 사모하며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주님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언구 목사/용문교회


목-생명은 칼을 이긴다
본문: 왕상 3:16~28
찬송가: 327장
 
성전을 완공한 솔로몬은 모세가 만든 장막이 있는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다. 하나님은 그런 솔로몬의 헌신에 너무 기뻐서 꿈에 나타나셔서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을 올바르게 통치하고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였고,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다. 솔로몬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기도를 드린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대신하여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을 올바르게 통치하고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한 것이 마음에 꼭 들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감동시킨 솔로몬은 세상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지혜를 얻었다. 잠언과 전도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솔로몬의 작품이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삶의 현장에서 꼭 필요한 지혜이다. 그것은 삶의 기술이 아니라 생명의 지혜이다.
 
본문을 보면 어느 날 창녀 두 사람이 솔로몬에게 재판을 청하였는데, 서로 살아있는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우겼다. 이 때 솔로몬은 신하들에게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고 명령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재판이다. 그러나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재판이다. 둘 다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우기니 둘로 나누어주면 가장 공평하고 확실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나누어야 할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생명은 칼로 나누면 가치가 없어진다. 칼로 나누는 순간 아이는 아이가 아닌 것이다.
 
그 때 살아있는 아이의 진짜 엄마가 "살아 있는 이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어도 좋으니, 아이를 죽이지는 말아 주십시오"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다른 여자는 "나누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러자 솔로몬은 "살아있는 아이를, 양보한 저 여자에게 주고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고 판결한다.
 
솔로몬은 원래 덕이 있는 현군이라기보다는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을 치러낸 전제군주의 전형이었다. 사실 솔로몬은 자칫 포악한 군주가 될 뻔한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런 그가 다시없을 현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사람을 무 자르듯 처단하던 칼의 논리를 버리고, 생명 구하는 일을 자신의 통치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재판은 바로 그런 그의 신념을 확인시켜 준 매우 값진 사건이다.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솔로몬은 생명과 소유가 서로 맞서는 첨예한 대립의 와중에서, 생명의 힘이 칼의 힘을 이길 것이라 굳게 믿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지혜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내가 예수님이 주신 생명과 사랑을 가슴에 품고 죽음의 칼을 이기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지한 목사/호산나교회


금-오래된 성도의 울음
본문 : 히 2:3~4
찬송가 : 287장
 
땅을 파다가 오래된 기왓장 하나가 나와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박물관에 가져가려고 한다.
 
우리 성도들은 대체로 30년, 50년, 생명을 다 할 때까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 이런 오랜 신앙생활을 한 성도들이 대부분인 게 요즘 교회 안의 모습일 것이다.
 
신명기 34장 7절을 보면 모세는 죽을 때 나이가 120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했다고 한다. 모세의 나이가 120세였지만 어떻게 그렇게도 원기 왕성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기 때문에 세상근심을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가랴 9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양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은 왕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리라 하셨다. 오래된 성도는 왕관의 보석같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을까? 나는 보석 같은 성도일까?
 
오늘 본문을 보면 성도들이 받는 구원을 큰 구원이라 한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도 여러가지 이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구원을 증언하셨다고 한다. 성도들은 이 큰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 길고 긴 세월동안 신앙생활을 한다.
 
이제는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나는 이 큰 구원을 받았느냐? 주여 주여 하는 것이 내 입에만 있어서는 안된다. 주께서 내안에 살아계시는 것을 내가 알아야한다. 그리하여 구원을 확신해야한다.
 
무엇으로 구원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까? 울음을 보면 알 수가 있다 하겠다. 구원이 큰 구원이기 때문에 천지를 얻는 것보다 구원 얻는 것이 더 좋다. 자기가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하면 울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참된 성도는 정말 큰 구원을 받았으니 너무나도 감격스러워 기쁨의 울음을 울 것이다.
 
성도가 구원 받았는지 확신이 없다면 이렇게 생각해야 된다. '어쩌면 구원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내안에 예수님이 없다. 큰일 났다. 이일을 어찌해야 할까'
 
가슴치고 탄식하는 울음이 나올 것이다. 가슴치고 탄식하는 울음은 회개한 자들이 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잘 믿고 못 믿고는 울음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늘의 기도>
저희가 이 땅에 있지만 주님께로 가까이 더욱 가까이 가게 해 주옵소서. 내 안에 살아 계시옵소서. 구원의 감격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정한 목사/주사랑교회


토-누구를 드러내는 순종인가?
본문 : 민 20:1~13
찬송가 : 526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 행진하는 중에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백성들이 이 어려운 상황을 모세와 아론에게 따지고 항의하고 원망하며 문제를 풀고자 한 것이다. 답답하고 억울한 상황에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물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게 된다.
 
여기까지는 모든 일이 순탄하게 이루어졌다. 백성들의 원망, 모세와 아론의 기도, 하나님의 응답의 공식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지 않은 것이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공동번역성경에서는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한다. "반역자들아, 들어라. 이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해주랴?"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고 있는 말들 속에서 우리는 모세의 개인감정, 백성들을 향한 원망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과정에 자신의 감정을 집어 넣은 것이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께서 시키지 않은 일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반석에게 말로 명령하라 말씀하셨는데 모세는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친 것이다. 백성들의 갈증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일까? 이 일이 만일 세상 일이었다면 결과만 선한 것이면 과정이 어떻게 되든 좋았겠지만, 이 일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수행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고 책망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이 나오는 것을 보게 하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깨닫게 하려 하셨는데 모세는 자기 자신이 심판자가 되어 백성들에게 개인감정이 섞인 말을 전하고, 반석을 두 번 쳐서 마치 모세 자신이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한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려는 방법을 모세는 자기 방식대로 순종한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순종은 온전한 100% 순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이 언제나 100%이고,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항상 100%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믿음과 온전한 순종의 모습을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함 받는 성도가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일을 행하며 개인 감정이 앞서지 않게 하시고, 개인의 지혜를 자랑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곽철희 목사/청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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