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있는 괴물

우리 안에 있는 괴물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10월 16일(수) 13:35
화이(장준환 감독, 액션, 스릴러, 청소년관람불가, 2013)
 
영화 이해를 위해 먼저 캐릭터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가장 큰 궁금증을 유발하는 두 명의 캐릭터 가운데 하나는 범죄 조직의 지도자 석태(김윤석 분)이고 다른 하나는 화이이다. 석태는 유괴한 아이를 살해하지 않고 살려둔다. 게다가 '화이(여진구 분)'라는 이름까지 붙여 아들로 삼으며 조직원의 일원으로 키운다.
 
유괴된 아이로서 조직의 아들로 양육된 화이는 범죄 조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즐겨 들으며, 학교에 다닌 적은 없어도 교복을 즐겨 입고, 여학생 앞에서 제대로 말을 못하는 순진한 면모를 갖고 있는 청소년이다. 게다가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아들로서 화이는 아버지의 요구를 받을 때마다 괴물 환영에 시달린다. 그리고 마침내는 아버지를 포함해서 자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제거하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화이, 그는 과연 누구인 것일까?
 
화이에게 석태는 살아남기 위해 아들을 강하게 키우는 엄격한 아버지다. 화이 주변에 아빠로 불리는 사람들은 화이의 삶에 필요한 각종 기술들을 전수한다. 마침내 화이가 자신이 누구이고 또 그동안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빠라 불리는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에서는 일종의 성장 영화의 단면이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석태를 포함해서 다른 아빠들이 사회에서 작용하는 각종 규범 체계들을 비유한다고 본다면, 결국 독립된 삶을 살기 위해선 자신을 둘러싼 규범 체계들을 극복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이해의 단서로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것은 괴물 이미지다. 화이는 어려서 유괴되어 자신이 유괴되었는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괴물 같은 조직원들에 의해 하나의 괴물로 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화이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은 그의 눈에 수시로 보이는 괴물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괴물 환상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괴물은 석태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생활할 때 그는 괴물 환상 때문에 매우 힘들어 했다. 괴물의 정체는 자신의 현실에서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희망이었다. 왜 희망이 석태에게 괴물로 작용하게 되었는지 영화는 침묵한다.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결코 변하지 않는 석태의 현실에서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착한 세상에 대한 희망은 오히려 고통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일 뿐이다. 아무리 기도해도 전혀 변하지 않는 현실에 압도되어 석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자기에게 천사같이 대해주던 이사장 아들에게 잔인한 일을 행함으로써 자신에게 불필요한 희망을 품게 했던 대상을 제거한다.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선택함으로 자유로워진 것이다. 석태는 희망할 수 없는 현실이 육화된 형태다.
 
화이 역시 동일한 환영에 시달린다. 혈연관계는 없었기에 사회적인 유전자를 생각나게 하는데, 아버지와 다른 점은 스스로가 괴물이 되기를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자기의 진정한 부모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자신이 행한 일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을 때, 화이는 괴물에 맞설 용기를 갖게 되고, 마침내 괴물을 자기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괴물들과 맞서 싸워 물리칠 수 있게 된다.
 
감독은 괴물 이미지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괴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화이'에서 괴물은 우리 안과 밖에 있는 무엇으로 정체성을 바로 찾기 위해 극복해야 할 벽이며 장애물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대처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은 전혀 달라진다. 석태와 화이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석태는 괴물에 맞서 싸우는 가운데 스스로 괴물이라는 정체성을 얻지만, 화이는 괴물에 맞서 싸울 수 있기 위해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회복함으로써 괴물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괴물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영화를 통해 장준환 감독은 우리 안의 괴물을 화두로 던지고 있다. 괴물이 무엇에 의해 또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말하고 있는데, 우리 안의 괴물은 다분히 사회적인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생각해보게 되는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괴물이 등장하게 만드는 사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의 실재이다. 먼저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죄의 근원이 되는 욕망이다. 생명나무의 실과가 아닌 선악과를 선택하게 만든 욕망. 신이 되고 싶고, 내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살기를 원하는 욕망,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괴물이다. 이것은 아무런 변화의 능력이 없는 헛된 희망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며,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해 희망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탈진하게 만들 뿐이다. 끊임없이 소비하나 결코 생산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 스스로를 괴물로 만드는 주범이다. 기독교가 이런 거짓된 희망을 주지 않기 위해선 희망하는 대로 삶을 살아야 한다. 희망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것이라 우리는 단지 기대만 할 수 있을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성취하실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희망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발견하고 또 볼 수 있게 된다. 변화의 능력이 없는 희망은 무지개를 좇는 것과 같아서 우리로 탈진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 우리 안의 사악한 괴물을 깨우는 계기가 된다. 괴물이 되기를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욕망의 화신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또한 필요에 이끌려 욕망을 우리 안에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욕망을 간과해서도 안 되며, 우리 안의 괴물은 믿음을 통해 직면하고 직시하는 가운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만 한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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