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교제하는 것이 힘듭니다.

세상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교제하는 것이 힘듭니다.

[ 상담Q&A ] 상담Q&A

조택현 목사
2013년 10월 02일(수) 10:59

   
Q. 신앙 때문에 세속적인 것을 피하다 보니 주변의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교제하는 것이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어서 마음이 편하긴 한데 왠지 사회 속에서는 편치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올바른 교제관계는 어떤 것인가요?
 
A. 자연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 오롯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질문과 연관되는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어느 폐쇄된 공간 안에 모여 사는 동종의 동물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근친교배 때문에 생겨나는 기형체와 열성체의 출산이 세대로 이어지면서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이 동물들이 건강하게 살려면 자기네들이 살던 공간을 박차고 뛰쳐나가 다른 공간에 있는 동물을 찾아가야 합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경계인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교우들과 교회 안에서 교제하면서도 여전히 세상 속에 있는 삶의 터전에서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도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양쪽에 다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건강한 신앙과 삶이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관한 복음을 듣고, 믿고, 그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도록 하는 것을 다른 곳이 아니라 이 세상이란 공간 안에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만 아니라 이 세상 속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로 보아야 할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필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 신앙인과 비신앙인은 다를 것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기독교인이 기독교인들과만 교제하는 것은, 그리고 설령 비기독교인들과 교제한다 하더라도 신실함이 없이 필요에 따라서만 교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 1:28)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맞지 않습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독교인의 시야는 모름지기 세상 전체를, 그리고 그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과 마음 속에서부터 어떤 차별도 없이 신실하게 교제하여야 합니다.
 
단, 기독교인의 교제에는 절제의 미덕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고전 10:23) 유익하지 않고 덕을 세우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피하여야 합니다. 비기독교인과 교제에 있어서 기독교인은 신앙을 양보 없는 절대 마지노선으로 가져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점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을 사귀는데 있어서 신앙의 지조를 다 내팽개친 나머지 이방신전에서 음란과 방탕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교제에서 타산지석으로 배워야 할 것은 신앙이 무너진 터 위에 형성되는 비기독교인과의 교제는 자기의 영을 갉아먹는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근거 위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눈을 가지고 이뤄지는 교제는 비기독교인이 보기에도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조택현 목사 / 광주서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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