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데까야 마을 기근 현장

에티오피아 데까야 마을 기근 현장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

이은용 선교사
2013년 09월 06일(금) 14:25

균형있는 지역사회 개발을 통한 복음전파
 
2003년 7월 28일 '녹색기근(Green Famine)'이라는 제하의 신문 기사를 읽고 데까야 마을을 방문했다. 데까야 마을은 입구에 녹색 버드나무가 즐비하게 심겨져 있는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인구 1만 2500여 명의 데까야 마을은 지난 3년 동안 심한 기근으로 인해 영양실조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일주일에 70명씩 죽어나가는 참담한 곳이었다.
 
필자는 이 마을에 살고있는 '아디세 문다소'라는 여인의 집을 방문했다. 이 여인은 마른 풀잎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초가집에서 몇 마리 닭과 개, 그리고 5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지난 봄에 남편과 큰 아들을 잃었고 지금은 큰 딸 '베자비'가 말라리아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이 여인은 죽어가는 딸 앞에 깊이 파인 눈을 덩그러니 뜨고 힘없이 앉아 있었다. 아마도 3번째 장례를 치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가슴을 후벼파는 듯 눈 언저리는 마른 눈물 자국이 찍혀 있었다.
 
1991년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되어 수많은 선교여행을 했지만, 그때처럼 나의 무기력함을 실감한 적은 없다. '주여, 어찌하오리까?' 고열로 펄펄 끓는 베자비의 머리에 손을 얹고 탄식과 치유의 기도를 드렸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어린 베자비와 어머니의 슬픔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아펐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꺼내주면서 "이 돈으로 말라리아 약을 사고 남는 돈은 식량을 사서 아이들을 먹이세요"하고 나오는데, 세모꼴 머리에 횡한 눈을 가진 어린 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5살난 '아스포바라'는 이 여인의 막내 아들이었다. 나는 쓰린 가슴을 움켜잡고 마당에 무릎을 끓고 하늘 아버지에게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 도와주옵소서. 하늘 아버지의 거룩한 공급(Divine Provision)을 기다립니다.'
 
신학생 시절 '주기철 기도탑'에서 짝기도를 하며 하루를 결산했던 오랜 기도 친구인 장남혁 목사(서울장신대 교수)에게 데까야 마을의 참상을 알리고 기도를 부탁하였다. 장남혁 목사는 소망교회에서 24명의 선교 팀원들과 함께 데까야 마을을 방문했다. 5명의 의사를 포함한 소망교회 선교팀은 711명의 환자를 치료하였고, 극빈자 502가정에게 한달치 양식을 제공했다. 그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소망교회는 데까야 마을 회복을 위한 종합적인 사업을 지원하였다. 데까야교회를 증축하여 10년이 지난 지금 1500명의 교세로 성장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초등학교 교실을 건축해 미래 지향적인 교육 사업을 진행했으며, 1만 2565명의 주민들에게 생수를 공급하는 우물 사업으로 기근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견고한 콘크리트 다리 공사를 통해 우기철마다 물이 범람하여 고립되는 데까야 마을에 식량이 공급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데까야 마을 구하기' 종합 프로젝트에 대해 에티오피아 정부는 한국 교회와 정부에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나는 한국교회가 6.25 전쟁때에 에티오피아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기뻤다. 그리고 오늘도 '한국교회여, 전심으로 생명을 걸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동참하자'는 구호를 외쳐본다.

총회 파송 케냐 이은용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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