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원초적인 그리움

인간의 원초적인 그리움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8월 23일(금) 17:01
그랑블루(뤽 베송, 드라마, 1988ㆍ2013)
 
그랑 블루는 1988년에 개봉되어 뤽 베송을 유명 감독의 반열에 올린 영화 가운데 하나다. 2013년에 개봉된 작품은 리마스터링 감독판으로 53분 정도가 추가되었다. 한국에는 1993년에 처음 개봉되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치 않는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정서는 다른 세계의 존재와 그리움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뤽 베송 감독은 인간 본연의 것이라 할 수 있는 다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바다와 육지에서 벌어지는 두 남자의 우정을 이야기 얼개로 삼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뤽 베송이 그리움을 말하면서 사용한 소재는 바다이다. 바다는 육지와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뉘어졌다. 같은 사람이라도 남자와 여자가 달라 두 세계를 이루듯이, 바다와 육지 역시 서로 다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구 위에는 두 개의 세계가 현존하는 셈이다. 뤽 베송 감독이 영화 제작에서 염두에 둔 것은 바로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바다와 육지, 바다와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만나면 또 다시 새로운 세계를 그리워하는, 영원히 지속하는 그리움의 본질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관건은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 이야기와 영상미에 착목하는 것이다.
 
영화는 자크와 엔조, 두 사람의 우정을 매개로 전개된다.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배경은 그리스 해안의 어느 작은 마을이다. 넓고 푸른 바다와 하얀 색 건물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자크는 바다를 현실로 삼으며 살아간다. 해녀와 같은 삶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은 후에 바다는 그의 유일한 현실이 되었다. 가족이 없었던 그는 돌고래를 유일한 가족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그에게 육지는 바다와 관련해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도 바다를 향한 그리움과 열정은 전혀 식지 않아 그녀를 매우 당황하게 만들 정도다. 이것은 어릴 때 친구이자 프리다이빙 세계 챔피언인 엔조에게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바다를 대하는 태도는 달랐지만, 그들은 바다를 매개로 친구가 되었고 우정을 쌓아나갔다. 두 사람의 우정은 다이빙 실력을 겨루는 가운데도 변치 않는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심 때문에 엔조는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는 깊이까지 잠수하다가 숨을 거두게 된다. 자크와는 달리 엔조에게 바다는 생계유지를 위한 곳이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현실이었다. 엔조를 잃고 자크는 큰 충격을 받는데, 영화는 자크가 여자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다로 잠수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마지막 장면을 그리움에 착목하여 영화를 보면서 바다를 향한 자크의 그리움과 열정을 생각하고, 또 많은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복선(자신을 떠나 뉴욕으로 간 엄마, 아버지를 물 속에서 잃는 장면, 돌고래를 바다로 내보내는 장면, 엔조 곁을 떠나는 여자 친구 등)을 고려한다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에 맘이 기울어진다. 이것은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그리움의 정서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영화를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면, 영화로부터 우리는 몇 개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먼저는 인간의 원초적인 그리움이다. 다른 세계를 향해 있고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그리움이다. 둘째, 삶을 구성하는 두 세계에서 인간은 어느 한쪽을 망각하지 않아야 하지만, 또한 어느 한 쪽에 매몰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두 세계 사이에서 균형 잡힌 삶은 건강한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셋째, 바다가 아무리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해도 그것은 육지에서 사는 동안 유효하다. 게다가 육지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또 자신이 사랑하고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있다. 비록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살아도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메시지가 삶에 대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친숙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나라를 고대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면서 긴장과 이완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런 삶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삶의 방편으로 삼거나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도구로 여기는 일이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인간에 의해 조작되거나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영원한 타자로서만 경험되는 세계다. 그것은 진리의 세계이고 기쁨의 세계이며 온전한 삶이 펼쳐지는 세계다. 모두가 꿈꾸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 경험에만 머물러 살 수 없는 까닭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소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워하지만 언제든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본연의 삶이다. 변화산에서 일어난 일로 정신이 혼미해진 베드로가 기꺼이 산에 머물러 있고자 했을 때, 하산하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 점을 환기하신다. 여름 수련회를 통해 얻은 은혜는 세상에서 능력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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