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이방인 선교

이웃집 이방인 선교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

박영주 선교사
2013년 07월 01일(월) 13:23
피지는 토착민 외에 130여 년 전부터 사탕수수 노동자로 집단 이주해 온 인도-피지인들이 전 인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의 80% 정도는 힌두교도들이고 그 나머지는 이슬람교도들이며 소수의 시크교가 있다. 기독교인이 다수인 토착민들에게 함께 섞여 살고 있는 인도-피지인은 이웃집 이방인이다.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우던 한 인도-피지인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이 18세 되었을 때 피지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꿈을 이루었다. 힌두교 사제의 아들이며 철저한 힌두교도였던 그는 어느 기독교인을 통해 병 치유의 경험을 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기독교인이 되었다. 많은 핍박이 뒤따랐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고모는 사원에서 자살을 했으며 누이는 악한 영에 시달렸다. 그는 힌두교 신들에 대한 의분이 끓어올라 힌두교 사원에 불을 지르고, 방화범으로 붙잡혀 4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옥중에서 처음에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낸 죄밖에 없는데 왜 감옥에서 생전 해보지 않은 부역을 하며 고생하게 하십니까?" 그러면서 그는 점차 축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술과 파티를 즐기며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지난 날을 회개했다. 그러자 주님께서 힘들었던 농장 일에서 쉬운 식당 일로 바꿔 주시며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셨다. 출소 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를 섬겼다.
 
어느 날 한 호주 선교사가 그에게 신학 공부를 권유하며 후원을 약속해 줘서 아내와 다섯 살 된 딸을 데리고 필자가 운영하는 남태평양선교훈련학교에 입학했고 부부가 함께 3년 과정을 잘 마쳤다. 그들이 바로 사웨니 희망교회 담당 전도사로 6년간 사역했던 비제이(Vijai) 부부이다. 그들이 졸업할 무렵 주님은 필자에게 인도-피지인 교회 개척에 대한 부담을 주셨다. 피지 토착민과 대부분의 남태평양 섬나라들은 명목상 기독교인이 많다. 그래서 제자훈련과 지도자 훈련 선교전략이 필요하지만, 인도-피지인은 미전도 종족으로 교회 개척 선교전략이 필요하다.
 
2005년 비제이 가정을 앞세우고 인도-피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피지 남섬 서부지역에 희망교회를 개척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동네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했다. 마침 견습 선교사로 온 한국인 신학생과 인턴쉽 학생들이 함께 기거하면서 노인들 영정 사진도 찍어주고, 청소년들에게 기타도 가르쳐 주며, 어린이 미술교실도 열었다.
 
1년쯤 지난 뒤 동네 이장 집 베란다를 빌려 창립예배를 드렸다. 얼마 후 주님은 한국의 한 교회를 통해 작지만 예쁜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게 해 주셨다. 필자는 초기에 선교훈련학교에서 4시간씩 차를 타고 가서 매주일 예배를 인도하였지만, 점차 한 달에 한 번, 분기에 한 번 그리고 세례식 등 특별 행사에만 참여하고 비제이 전도사에게 모든 사역을 위임했다. 그는 주님의 은혜로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갔고 3년이 채 안되어 힌두교에서 개종한 초신자 80여 명이 모여 주일예배를 드렸고 4년 만에 자립교회로 성장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2012년 교회의 몇몇 성도들과의 갈등으로 신임을 잃었고, 성도들이 하나 둘 교회를 떠나갔다. 필자는 비제이 전도사에게 안식년으로 남태평양선교훈련학교에서 1년간 학위과정을 공부하며 영적, 정서적인 재충전 기회를 갖게 했다. 피지 원주민 기독교인들은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르며 종족 갈등 등의 이유로 인도인 이웃들에게 전도하지 않는다. 인도-피지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어렵고, 인도-피지인 목회자를 세우는 일은 더 많은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어, 인도-피지인 선교에 선교사의 역할이 크게 요청되고 있다.
 
본교단 파송 피지 선교사 박영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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