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좀비 현상이 주는 교훈

대중문화 속 좀비 현상이 주는 교훈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6월 28일(금) 10:09
월드워Z(마크 포스터, 드라마, 스릴러, SF, 15세, 2013)
 
좀비 영화다. 기존의 좀비 영화와 결코 비교해볼 수 없는 스케일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가족 영화이기 때문에 우주전쟁을 빗대 가족의 의미를 탐색했던 '우주전쟁'(스티븐 스필버그)을 보는 것 같다. 좀비의 공격으로 세계는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좀비에게 물림으로써 감염되어 좀비가 된다는 사실은 알아도 왜 좀비가 갑자기 등장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구의 어느 곳(대한민국)에서 발생하긴 했지만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되어 인류의 재앙으로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첨단 군사 장비며 과학 지식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원인을 모르니 치료할 수도 없고,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진정으로 살아있는 자들이 좀비가 되기 않기 위해선 살아 있는 듯이 보이는 좀비를 무차별 죽여야 하는 비극적인 현실이다. 인류의 적에 의해 초래된 위기의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면서 영화는 문제 해결을 위한 인간의 사투 과정을 보여준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설상가상으로 바이러스 분야의 전문가로서 백신을 개발할 유일한 희망이었던 사람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오직 대피하는 것만이 상책으로 여겨지나, 사실 그것조차도 의심스럽다. 대피할 곳이 없다는 말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UN 조사관으로 임명된 레인(브래드 피트)에게 달려 있는 듯이 보인다. 레인은 좀비의 공격을 피해 대피하는 과정에서 좀비의 공격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이것을 통해 레인은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의 경우 좀비의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치료책은 못되지만 위장술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동물들이 병든 동물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동물학적인 행태에 의해 뒷받침된다. 레인은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서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가설을 입증하게 되는데, 좀비의 직접적인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위장술은 파죽지세로 확산되고 있는 좀비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또한 반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채택된다. 군인들이 좀비와 맞서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고 결국 이것을 통해 인류는 새로운 세상을 희망할 수 있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먼저 최근에 대중문화의 호러나 판타지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좀비 현상이 궁금해진다. 왜 하필 좀비인가? 좀비는 흔히 '걸어다니는 시체'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서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노예들의 토속 종교와 혼합된 부두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흔히 부두교의 사제인 보커(boker)가 인간에게서 영혼을 뽑아낸 존재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탈종교적인 맥락에서 대중문화의 소재로 사용되면서 영혼이 없는 인간, 곧 자신의 생각과 의지나 판단행위가 없이 외부의 명령에 복종만 하는 존재를 가리킨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연상케 하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곧,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발전시켜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악의 평범성이란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 다시 말해서 인류 사회에 불행을 가져온 악을 저지른 사람들이 특별히 그들이 악한 본성을 가졌기 때문에 악을 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제도와 체계에 순응하며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맥락에서 본다면 바로 이런 존재가 좀비인 것이다. '웜바디'는 기존의 좀비영화와는 달리 감정과 사랑이 결핍된 존재로서 좀비를 말한다. 이성 중심적이고 능력만을 최고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감정이 없는 그래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좀비로 이해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좀비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류 사회에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존재, 감염력이 뛰어나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 살아 있지만 살았다고 볼 수 없는 존재를 가리킨다. 전인적인 인간으로서 살기를 포기하는 존재를 가리킨다. 결국 대중문화 속 좀비 현상은 단지 부두교에서 유래하는 미신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서 배척할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사회에 생각 없이 사는 존재가 많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끝으로 포스터 감독은 좀비의 공격에 대한 각 나라의 대처 방안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각 국가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먼저 발생 국가를 대한민국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MB처럼 대한민국이 G8에 속한 나라로서 국가의 품격이 높아졌다고 자랑은 하지만 사실 제대로 된 역사의식도 없이 사는 국가임에도 전 세계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인류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예측불가의 분단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북한의 경우에는 감염 우려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이빨을 모두 뽑아버림으로써 좀비에게 물리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이야기는 민중에 대한 북한 당국의 폭력정치의 실상을 폭로한다. 이스라엘이 전 세계 가운데 유일하게 좀비의 공격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나라로 등장한다. 이것은 국경지역에 높은 벽을 쌓아올렸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갈등에서 그동안 이스라엘이 보여준 폐쇄적인 태도를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선민사상의 배타성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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