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가

돈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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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목사
2013년 06월 12일(수) 13:44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돈을 택할 것인가. 그가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그를 영접하러 나온 소돔 왕이 그에게 말했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창 14;21) 졸지에 한 몫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아브라함, 그런데 그에게서 나온 대답은 뜻밖에도 "소돔 왕, 당신에게 속한 것은 단 한 푼도 받지 않겠다"(창 14:23)는 것이었다. 굴러온 복을 발로 차버린 것이다.
 
왜 그는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한 것일까. 그는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하나님을 붙든 것이다. 그의 선택의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나를 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다. 나는 오직 그분만을 믿고 의지할 것이다.' 과연 그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을 뿐 아니라 그에게 주변 왕들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부를 허락하셨다.
 
아브라함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갈등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 내 손에 쥐어져 나를 든든하게 하는 돈을 의지할 것인가. 자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는 돈을 의지한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같은 몇몇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선택한다.
 
모세는 애굽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는 것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선택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당시 모세를 키워준 바로의 공주는 바로의 무남독녀 외딸 테르므티스였다. 모세가 잘만하면 바로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당시 애굽에서 노예생활하고 있던 자기 민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선택했다.
 
왜 그는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당대 최고의 문화를 향유하며 왕실에서 편안하게 최고 수준의 삶을 살 수 있었는데 도대체 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노예들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일까. 그에게는 바라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장 26절은 이렇게 전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는 두 가지를 놓고 비교했다. 무엇이 참으로 나에게 유익한 것인가. 무엇이 참으로 옳은 것인가. 기도하며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그는 더 좋은 것을 선택했다. 신앙생활이란 이처럼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 11:16)  모세는 지금 당장의 만족보다는 영원한 기쁨을 맛보기 원했다. 지금 당장 잘 사는 것보다는 영원히 잘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보았다. 지금 당장의 쾌락과 안일보다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안식을 사모했다.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그는 하나님을 붙잡았다. 그의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그렇다면 나 자신이 과연 믿음 안에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리트머스지를 갖다 대보면 알 수 있는데 그 리트머스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당신은 참으로 돈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가.

김용수 목사/반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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