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食口)

식구(食口)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5월 28일(화) 15:42

고령화 가족(송해성, 드라마, 15세, 2013)
 
'고령화 가족'은 천명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데, 제한된 상영시간을 포함해서 영화적인 재현이라는 제한 때문에 소설 속 캐릭터들이 주는 디테일한 느낌을 오롯이 표현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소설의 상상력과 느낌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과 무관하게 영화로만 감상한다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살아나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좌충우돌하는 가족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실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전통적인 이해를 통해서는 결코 정의할 수 없는 현대 한국사회에서의 가족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묻는다. 그러나 가족을 정의하기보다 전통적인 이해인 '식구(함께 밥 먹는 사람)'를 영상으로 재현하면서 관객을 설득하려고 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현실을 기술하면서 가족이 무엇이어야 함을 말하기보다 가족이 어떠할 수도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관건은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겠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이미 부모로부터 독립할 나이에서 한참이나 지난 자식들이 낡은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는 엄마 집으로 모여든다. 큰아들은 교도소를 드나드는 한량으로 엄마의 집을 가장 편하게 생각하고, 영화감독인 둘째는 부인이 바람을 피워 이혼 직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입봉작에서 참패한 후에 집세마저 낼 돈이 없어 쫓겨나 엄마의 집에 안착한다. 이혼 경력이 있고 중학생 딸을 둔 셋째는 바람을 피우다 남편에게 얻어맞고는 도저히 못살겠다며 엄마의 집으로 온다.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은 가족이라는 끈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끼게 할 정도다. 위아래 구분도 없이 서로 반말과 욕설을 섞어 쓰는 모습은 그야말로 콩가루 가족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서 그들은 서로 피를 나눈 형제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각각 다른 아버지와 엄마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묶어주는 힘은 오직 엄마다. 그리고 이들이 가족이라고 볼 수 있는 유일한 점은 위기의 상황에서 서로 힘을 합쳐 극복하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영화는 가족이란 굳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한 밥상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으로 이해한다. 적어도 그렇게 되길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 그것이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현대사회의 가족을 이해하는 단서로 식구, 곧 함께 밥을 먹는 관계는 과연 정당할까? 사실 현재 한국의 가족은 함께 밥을 먹는 시간조차도 얻기 어렵다. 특히 맞벌이 부부와 자녀들의 입시위주로 이뤄지는 삶의 궤도에서 가족이 함께 밥 먹는 일은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식구라는 것도 가족을 이해하는 데에 결코 적합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단지 '식구'의 모습으로서 가족의 단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상황은, 만일 사회학적인 탐구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대개 부정적인 경험 때문이거나 가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체성 혹은 의미를 찾기 위해서 몸부림칠 때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둘째가 그랬다. 그의 시점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가족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게 만드는 모습으로 가득하다.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가족의 정체성을 찾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가족을 정의함으로써 가족이라고 볼 수 없는 부분을 제거해보려고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의하는 태도로 가족을 본다면 제대로 남아 있는 가족이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족해체 현상의 배후를 들추어보면 '가족'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부부간에도 다르고 자녀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이해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하려는 태도로 가족을 접근해간다면, 그 끝에는 가족의 해체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깨달은 둘째는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자의식에 대한 변화로 가족 이해가 바뀌고 그의 현실 이해도 바뀐다. 다시 말해서, 그는 가족의 정체성을 묻는 태도에서 가족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현실의 의미를 묻는 태도에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바뀌었다.
 
'고령화 가족'이 현대 한국사회의 가족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가족을 애써 정의하려 하지 말고, 어떠한 모습으로 있든 먼저 가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가능한 삶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때로는 콩가루 가족이라 여겨질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한 밥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일로 여길 일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서로 다른 피를 가진 구성원이라도 엄마의 집에서 같은 밥상에 둘러 앉아 맘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가족이니까.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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