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삶과 꿈

서민의 삶과 꿈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5월 20일(월) 11:17
전국노래자랑(이종필, 코믹 드라마, 12세, 2013)
 
사전적인 의미에서 '서민'은 '사회적인 특권이나 경제적인 부를 누리지 못하는 일반 사람'을 일컫는다. 이전에는 아무 벼슬을 하지 못하는 평민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었다. 오늘날 이 말은 선거철마다 거리에서 동네에서 시장에서 광장에서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흔히 들을 수 있다. 실제로 서민을 위한 정치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 그들의 '한 표'를 탐했을 뿐이다. 그들에게 서민은 정치적인 입신을 위해 필요한 디딤판일 뿐이다. 서민을 배제한 정치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정치는 그랬다. 그래서 공공성을 바탕으로 서민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에는 언제나 슬픔과 분노의 정서가 빠지지 않았다.
 
서민의 애환을 담은 프로그램의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는 '전국노래자랑'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기존의 서민을 다루는 방식과는 조금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특히 '복면달호'를 계기로 음악영화의 가능성을 본 방송인 이경규 씨가 제작자로 참여한 작품이다. 관객이 300만이 넘으면 1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야심찬 공약도 내놓았다. 과연 '전국노래자랑'만큼이나 흥행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음악영화하면 뮤지컬을 연상하게 되고, 또한 서사를 음악으로 혹은 음악을 서사로 풀어나가는 장르이지만, 이경규 씨는 1980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33년 동안 지속된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서민을 위한 대표적인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에서 소개된 실화들을 소재로 삼았다. 그야말로 서민적인 발상에서 비롯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화를 통해 '전국노래자랑이' 그토록 장수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를 확인해볼 수 있다.
 
한편, 영화는 스토리텔링의 한 방식이다. 영화를 많이 접하다 보면 웬만한 이야기는 대충 그 결말을 짐작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모든 이야기가 소재와 플롯은 다르다 해도 공통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뻔한'내용을 담고 있는 이야기는 관객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 관객의 주목을 끌기 위해 이야기는 어느 정도 충격이 있어야 한다. 특히 온갖 자극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전국노래자랑'은 서민의 삶과 꿈을 보여주고자 한다. 남녀노소 청춘남녀가 등장하고, 그들의 사랑과 이별, 희망과 좌절, 성공과 실패, 가족해체,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진입으로 생계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소상인의 고충, 대리운전자의 처절한 투 잡 인생, 임대보증금 인상으로 빚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서민, 회사 내 갑과 을의 관계에서 당하는 고충 등을 이야기한다. 그런 와중에서도 가슴 깊이 묻어둔 사연과 꿈을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며 그것을 기성 가요에 담아 노래한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고백이기도 하고, 상처받고 슬픈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며 부르는 노래이고,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출연하고, 누구는 그동안 접고 살았던 꿈을 키우기도 한다. 제품 광고를 위해 마케팅 차원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얽히고 설킨 이야기가 방송 출연을 계기로 노래와 함께 소개된다. 어느 것을 보아도 여론이 주목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꿈을 이뤄보겠다는 소박한 마음을 담은 이야기다. 게다가 해피엔딩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는 시점에서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삶의 희망과 활력을 안겨주고 싶은 제작자와 감독의 마음을 물씬 느끼게 한다. 가끔은 이야기치고는 너무 평범해 오히려 사실성을 의심할 정도지만 서민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서민뿐만 아니라 시장도 출연한다. 사실 시장과 을의 관계로 얽혀있는 서민 맹 과장의 모습을 전해준다고 보는 것이 옳다. 서민의 삶과 꿈이라는 것이 다양하기는 해도 특별한 것이 없어서 대개가 다 거기서 거기다. 따라서 영화는 처음부터 '뻔한' 내용을 전제로 하고 승부수를 던진다. 그런데 특별한 소재와 독특한 연출방식에 높은 가치를 주는 환경에서 이토록 평범한 소재와 소박한 연출방식은 결코 특별하지 않은 서민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은 김홍도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도드라진 부분이 없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결코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주목할 만한 연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 자체가 주는 재미와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맘 편하게 보면서 관객과 함께 울고 웃으며 나와 비슷한 처지의 서민의 삶을 슬쩍 들여다보면서, 혹은 그런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나의 일상을 멀찍이서 바라보면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 힐링의 순간을 경험하기도 할 것이다. 물론 한 편의 영화 안에 서민의 삶 전체를 담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서민의 삶이 곡해되는 것을 염려하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민의 삶을 서민다운 연출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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