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가능성

노인의 가능성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4월 24일(수) 15:15

송 포 유(폴 앤드류 윌리엄스, 드라마, 12세, 2013)
 
노년의 삶은 이제 젊은 세대들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을 정도로 대중문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소재다. 한국 영화계에서도 그렇지만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관객으로서 노인을 겨냥한 결과물이겠지만, 노년의 삶을 이해하고 또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필요성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한 사회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영화를 통해 노인 세대들은 자기 삶의 단편들을 되돌아 볼 수 있고, 이에 비해 언제나 자신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일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존재와 삶에 있어서 그동안 무엇을 간과하고 살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효에 대한 관념이 점점 희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노인 인권이 유린당하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 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사랑과 죽음 그리고 가족과의 화해는 비교적 단순할 수밖에 없는 노년의 삶을 소재로 만들어지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비교적 흔한 주제이다. 무엇이든 시간과 함께 변하게 마련이지만 특히 주목할 점은, 노년의 삶을 말하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인이 생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 가까이로 옮겨지면서 회색으로 가득한 그림들이 화려한 색채로 덧입혀지고 있다. 이것은 노인의 삶과 생각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고 또 이해가 다양하고 깊어졌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으로 인지하고 또 바르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송 포 유'는 처음 몇 장면을 보고도 결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소박한 내용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감동과 함께 극장을 나서게 하는 영화다. 소위 '착한 영화'로 불리기에 매우 적합해서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이야기는 영국의 어느 마을에서 '연금술사 합창단'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노인합창단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크게 보면 아내와 남편이 서로 화답하며 부르는 노래를 양 끝에 두고 전개되면서 가족이 회복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이 든다. 노년의 삶과 죽음과 사랑 그리고 상실의 아픔과 화해를 말하는 식상한 스토리에 뻔한 전개임에도 깊은 감동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눈에 띄는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쉽게 감동을 교감할 수 있는 음악을 소재로 삼고 있다. 특히 영화중에 말기암 상태인 아내 메리언(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분)이 마지막 힘을 다해 부른 신디 로퍼의 “True Colors”는 “난 당신의 진정한 빛을 볼 수 있어요. 그게 바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죠”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고집스럽고 까칠하기만 했던 남편의 속마음을 알고 있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부를 수 있는 최고의 노래이며 또한 사랑의 고백이었다. 이 노래를 부르고 난 후에 그녀가 눈을 감았을 때, 그동안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던 남편 아서가 대성통곡한 것은 자신을 이해해주고 받아준 유일한 사람을 잃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게다가 우여곡절 끝에 참여하게 된 경선에서 남편 아서가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잘 자요, 나의 천사. 이제는 눈을 감을 시간이야”라며 마치 죽은 아내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말을 하듯이 부른 “Good night My Angel”은 아내에게 화답하는 노래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둘째, 노인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편견에 직접적인 도전을 가함으로써 충격을 안겨준다. 노인은 성대가 약해 합창하기가 쉽지 않다, 고집스럽고 변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열정이 없다, 젊은 세대와 한 호흡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등등. 그동안의 편견을 영화는 모두 무너뜨린다. 다시 말해서 합창경연대회 출전을 위해 '연금술사 합창단'을 구성하여 락 음악을 선택하여 부르는 노인 합창단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노인들도 얼마든지 젊은 세대와 같이 인생을 즐기며 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아들과의 갈등과 화해 과정에서 보여준 아서의 진지하고 진솔한 모습은 고집스럽게 평생을 살아온 노인의 삶에서 쉽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셋째, 절제된 감정으로 연기하고 또 그렇게 연출되었다.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서라도 필요했을 법 했던 아내와의 유별난 애정관계나 상실의 아픔, 그리고 아들과의 갈등과 화해의 장면에서도 감독은 관객들의 마음을 갖고 놀기를 포기한다. 관객 스스로 느끼고 또 감동을 받으며 표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금을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좇아 사는 사람인 연금술사를 빗대어 만들어진 '연금술사 합창단'을 통해 감독은 노인 역시 그동안 자신들에게 꿈에 불과하다고 여겨진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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